나해 연중제22주간 화요일 루카4,31-37 (240903 행운동성당)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 내십니다. 왜냐하면 그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더러운 영의 이 외침은 어제 나자렛 회당에서 들었던 예수님의 말씀과 같은 맥락입니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루카4,23) 그러니까 서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카파르나움 회당에서는 예수님을 나자렛 사람이라며 받아들이려하지 않고, 나자렛 회당에서는 예수님이 카파르나움 사람들과 친하게 어울려 지내는 사람이라며 거부감을 들어내는 것입니다. 이 두 장면은 모두 회당에서 일어난 예수님에 대한 평가이자 사람들의 공통적인 반응입니다. 그 반응은 “우리는 우리대로 너희는 너희대로”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카파르나움에서는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자렛이나 구원시키십시오 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자렛에서는 나자렛 사람들이 아니라 당신 집안 가족들이나 해방시키고 구원시키십시오 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서로 예수님을 거부할까요????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은 순결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들과 어울려 다녔기 때문입니다.
즈카르야서 13,2에 의하면 유다인들의 순결한 생각을 알수 있는데, 그들은 한사코 하느님과 동등해지려는 우상을 경계했습니다. “그날에 나는 이 땅에서 우상들의 이름을 없애버려, 그들이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겠다. 또한 나는 예언자들과 더러운 영을 이 땅에서 치워 버리겠다.”
특히 오늘 복음에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은 이러한 우상 거부에 관해서 돌려서 말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렇게 말한 대목을 유념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예수님,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바꿔서 말하자면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신데 어쩌자고 우리를 죽이려고 하십니까?”입니다. 아니 그렇게 거룩하신 분께서 선택된 우리 민족을 벌을 하시면 되겠습니까???라는 말이나 다름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밖에서 세례받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잘 지낸다면 본당 신자분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볼까요??? 종교적으로 순결하지 못한 사람으로 볼까요??? 아니면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으로 볼까요??? 우리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을 수는 없습니다. 한쪽을 얻으면 다른 쪽은 소홀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종교적 순결함이 아니라 종교를 초월한 순결함을 지닐때에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종교활동을 잘 할 수 있을 것이고 종교활동을 하면서도 사회생활을 충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교를 초월한 순결함이란 말씀드렸다시피 종교인들이 아니라 가난한이들/ 잡혀간이들/ 눈먼이들/ 억압받는이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고 격려해 주는 마음입니다. 그러한 마음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거룩한 마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거룩한 영이신, 성령안에 머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