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나해 연중제16주일 마르6,30-34

jasunthoma 2024. 7. 21. 06:05

오늘은 연중제16주일이자 농민주일입니다. 한국교회는 7월 셋째주일을 농민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농촌에서 7월은 한가로운 달입니다. 팔월 한가위가 한가로울 것 같습니다만 그 때는 수확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추수가 끝난 다음에나 여유를 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수확이 끝나면 겨울에 비닐하우스 시설재배를 하기때문에 농촌에서 한가롭게 쉴 수 있는 달은 7~8월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6월에 모내기가 끝나면 7~8월은 농한기나 다름없습니다. 때마춰 아이들은 여름방학에 들어갑니다. 여름방학이 되면 강가에 가서 갱조개(재첩)를 잡던 생각이 납니다. 가축을 기르는 집안에서는 토끼풀이나 가축먹일 풀을 베러 나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농촌 어른들은 관광차를 불러다가 하루 관광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주로 논 농사하는 곳에서 흔히 있는 풍경입니다만 지금은 볼 수 없는 잊혀진 풍경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좀 쉬어라라는 말의 의미에 관해서 생각을 해봅니다. 먼저 쉰다는 것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푹 쉬는 것과 조금 쉬는 것입니다. 푹 쉰다는 것은 상투적 의미로 영원한 안식을 의미하는 말과도 같습니다. 하느님 곁으로 갈 때 우리는 푹 쉬게 되었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은 여섯째날까지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마치시고 보시니 참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일을 다 이루시고 이렛날 쉬셨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이 쉬셨다 함은 푹 쉬셨다에 해당합니다. 왜냐하면 그로부터 모든 것을 인간의 손에 맡기시고 당신은 가만히 계셨기 때문입니다. 천재지변을 이겨내는 것도 대자연을 이용하며 만물을 다스릴 권한도 모두 인간에게 위임해 주시고 당신은 푹 쉬셨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푹 쉬시면서 인간에게 맡긴 세상을 보시니 더 이상 참 좋았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참 좋았다에서 참 좋지 않네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만드신 최초의 세상 참 좋았던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고 그리워하신 나머지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당신 아드님의 강생과 부활, 이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좀 쉬어라하고 말씀하십니다. 푹 쉬지 말고 조금 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던 일을 완전히 끝마치고 쉬는 것이 아니라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쉰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제자들이 음식 먹을 겨를조차 없이 사람들을 맞이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늘 외딴 곳으로 물러가시면 하시던 대로 무엇인가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비록 제자들에게는 좀 쉬라고 말씀하셨지만 예수님께서는 항상 외딴곳으로 가셔서 하신 일은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신은 기도하셨지만 제자들에게는 가서 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제자들에게 외딴곳으로 가서 기도하라고 하지 않으셨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당신이 늘 하시던 대로 제자들에게도 가서 기도 좀 하여라 하고 말씀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물론 군중이 따라 오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늘 하시던대로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스승의 가르침은 항상 우회적이면서 사람을 자유롭게 해줍니다. 그리고 중요한 가르침일수록 말씀보다는 몸소 보여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규제하고 옭아매는 일은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제자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만 놀고 제발 가서 기도 좀 하여라 하고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게 되면 기도하는 일이 기쁨이 아니라 멍애가되고 짐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 기도를 하지 못할 상황에 처한 몇몇 제자들에게는 기도가 올가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제자들은 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쉬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제자들도 기도를 바치고 있겠지요!!! 스승이 저 곳에서 늘 하시던 대로 기도를 바치고 계시는데 마냥 쉬고 있을 제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몸은 쉬고 있지만 마음은 기도하시는 예수님께 다가가는 겁니다. 그러는 동안 힘들었던 몸과 마음이 치유가 안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제자들에게 기도하라는 멍애를 씌우기보다 쉼이라는 기쁨을 주심으로 갑자기 다가올 예상치못할 어려움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우리도 휴식을 지혜롭게 활용하여 우리의 쉼이 하느님의 창조보존에 협력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