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나해 대림제3주간 금요일 루카1,46-56 마니피캇 마리아의 노래 (20231222 성바)

jasunthoma 2023. 12. 22. 04:20

오늘 복음은 마리아의 노래(마니피캇Magníficat)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마그니피캇Magníficat이라는 말은 불가타본에 나오는 라틴어인데 내 영혼이 영화로운 주님을 찬미한다는 마리아의 노래 첫 소절"Magnificat anima mea Dominum,(루카1,46)에 나오는 단어입니다. 그리스어본에는 메갈뤼네이Μεγαλύνει로 되어있는데 이를 불가타본에서 마니피캇Magníficat(찬미하다 찬양하다)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리스어 메갈뤼네이의 원형 메갈뤼노μεγαλύνω는 올리다 드높이다 바치다 강화하다 다지다 칭찬하다 격찬하다 기리다 등을 의미합니다.

마니피캇은 마리아의 노래 이전에 역대기에서 언급되었는데 하느님의 성전을 봉헌하려고 준비하던 다윗이 먼저 하느님 집을 생각하며 고백했던 말입니다. “주님께 지어 바칠 집은 아주 웅장하고 그 명성과 영화를 온 세상에 떨쳐야 하니. . .”(1역대22,5) 하지만 다윗의 고백 이후에 주님의 집은 다윗의 뜻대로 바쳐지지 않았고 솔로몬에 의해 영화로운 성전이 처음으로 봉헌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해 그 성전은 모두 허물어졌고 이스라엘은 유배를 갔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칙령으로 파견된 유다인 총독 즈루빠벨에 의해 무너진 솔로몬 성전이 재건 되었습니다. 그러나 첫 성전에 비하면 볼품없는 규모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로마제국의 지원을 받은 헤로데왕에 의해 증축되었는데 세번째로 봉헌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이 세번째 성전은 헤로데 대왕에 의해 기원전 20년에 시작되어 기원후 62년까지 무려 82년에 걸쳐(요한2,20 “이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증축되었는데 이전에 지어졌던 성전에 비해 더 크고 아름답게 봉헌되었습니다.(마르13,1; 루카21,5) 그러나 기원후 70년 로마인들에 의해 재차 허물어져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마니피캇이 불려지기까지 많은 이스라엘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두고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성령에 의해 당신 안에 세워진 새로운 성전이 이제야 봉헌되어졌음을 알리는 이 새로운 찬미가 마니피캇으로 하느님께 응답드렸던 것입니다. 이후 당신의 아드님 예수님 또한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2,19)고 말씀하시며 당신 몸을 일컬어서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마리아의 노래 마니피캇에는 두 가지 큰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가난하고 겸손한 이들의 긴급구조요청입니다. 부자들과 권력자들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주는 가난한 이들의 긴급구조요청입니다. 두 번째는 그러한 구조를 요청하는 이들은 다름아닌 선택된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느님의 은총의 대상은 다름아닌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이 선택된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배려해 달라고 부르짖던 이스라엘 백성의 기대를 하느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긴급한 요청은 세상 끝날까지 이어질 인간 노력의 지침이 됩니다.

또한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이러한 긴급구조요청의 모델이 됩니다. 누구는 평생을 기다리게해서 성취시켜주시고 또 누구는 아직 때가 차지도 않았는데 성취시켜 주십니다. 지금 당장 필요한 이들부터 앞으로 장차 있어야할 요청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의 요구를 들어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가장 시급하게 애를 태우며 기다리던 엘리사벳부터 장차 있을 일을 미리 앞당겨서 이루어 주시는 성모님에 이르기까지 온 인류의 기대와 요청을 성취시켜주시기 위해서 늦장부리지 않으시고, 거절하지 않으시고, 지체치 않으시는 분이 십니다. 이 분은 곧 오실 분 임마누엘하느님이십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모든 요구와 바람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04/12/21 루카1,46-56

내 앞 길에 큰 산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

넘을 수도 있고, 돌아 갈 수도 있고, 

그 자리에 집을 짓고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큰 장애물을 만나면 위축될 것이다.

더구나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일이라면

용기를 내기보다는 절망과 좌절감에 사로잡혀 괴로워 할 것이다.

 

엘리사벳은 그렇게도 원하던 아이가 생긴 후

6개월동안 기뻐하며 하느님을 찬양하며 지냈다.

기쁜 나머지 누구를 만나도 즐거워서 하느님의 업적을 전했을 것이며

자신에게 이루어 주신 은총에 감사하며 기쁨을 나누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리아는 상황이 달랐다.

인간적으로 보면 원하지도 않은 뜻밖의 일을 겪었고

엘리사벳의 즐거운 표정에 기뻐하기 보다는

자신의 비천한 신세를 한탄이라도 해야 마땅했을 것이다.

둘은 너무나도 다른 처지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는 자신의 비천한 신세를 주님께서 돌보셔서

앞으로는 온 백성들이 자신을 복되다고 고백하리라고 노래한다.

인간적으로 바라본 마리아는 분명 비천한 몸이지만

마리아는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인간의 현실을 초월해버린다.

그러자 단단하게 얼었던 고드름이 녹아 흐르듯이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어려움이

하느님 앞에서는 복된 은총으로 스르르 바뀌며

마리아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