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제33주간 금요일 루카19,45-48 (20231124 대구협력자)
혹시 기도하는 꿈을 꾸신 적이 있으세요???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면 내가 바라는 그것이 꿈에 나타납니다.
월드컵 4강 신화때에 우리가 우승을 하지 못하고 4강에서 끝났던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그때에 결승전을 앞두고 관중들이 빨간 피켓을 들고 글자를 만들었는데 그때 문구가 "꿈은 이루어진다"였습니다. 그런데 이루어진다의 이 자를 대형 매스게임 글자체로 만들다 보니 이 자의 ㅇ 이 각이 져서 ㅁ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루어진다가 미루어진다로 보여서 우리의 우승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고 미루어졌다고 합니다. 설겆이 할 때에 마태오 수사님이 말씀해 주신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 시간을 허비했구나 하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습니까??? 아니면 나는 참으로 잘 살아서 다시 태어나서 살아도 이렇게 살아온 대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습니까??? 쉽게 말하면 여러분들이 꾸었던 꿈이 이루어졌나요?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았나요. 꿈이 이루어졌으면 내가 다시 살아도 이처럼 살아가야지 하고 흐뭇해 할 수 있지만 만약에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시간이 다시 주어진다면 이렇게 살진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할 것입니다. 저는 살면서 꿈이 두 번 바뀌었다고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처음에는 땅을 경작하는 농부가 꿈이었다가 다음에는 큰 공장 운영하는 사장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다시 태어나서 새로운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젠 그냥 수도자로 사는게 꿈입니다. 그런데 수도자로 산다는 것이 농장 주인이나 공장 사장보다 쉽습니까??? 끊임없이 말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격언이 있어서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단련시키는 것 같습니다.
침묵하는 꿈은 개봉하지 않은 편지와 같다-Talmud탈무드/ 꿈은 무의식을 깨기위한 훌륭한 길이다-Freud프로이드/ 꿈은 우리 의식으로 열리며, 무의식 그리고 영적 무의식 안에 그 길이 있다-Frankl프랑클
여러분들의 꿈은 어땠습니까??? 꿈들이 있었지요??? 어떻게 되었습니까??? 꿈이 이루어졌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성경을 토대로 해서 알 수 있는 예수님의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농부였을까요??? 어부였을까요??? 상인이었을까요??? 목수였을까요??? 혹은 교사나 사제였을까요???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 봉사하는 사람???/ 평화로운 사람???/ 위로하는 사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집과 강도의 소굴은 어떻게 다를까요? 꼭 성전이 아니더라도 기도하는 사람이 살면 기도하는 집이되고 강도가 살면 강도의 소굴이 되겠지요 하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기도하는 사람과 강도의 차이는 뭘까요? 기도하는 집에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강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을 무상으로 내어 주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강도의 특징은 거둬들이는 일만을 따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것 저것 세상 모든 만물에 꼬리표를 붙여서 가격을 매깁니다. 그래서 그것을 계산해 내는 일에만 골몰합니다. 그러는 중에 우리의 귀한 시간을 다 허비해 버리고 맙니다.
[ 부끄럽지않은 열정 ]
내 집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면 내 열정이 드러난다. 볼리비아로 선교와서 지금까지 한 주간도 빠짐없이 토요일과 주일이면 공소에 가서 도서선교를 하고있다. 이 공소는 볼리비아에서 성바오로수도회에 위임된 유일한 공소다. 그런데 이곳에서 대단하고 훌륭하게 홍보를해서 일거에 몇 천권의 도서를 보급하려는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냥 책을 보여주려는게 전부다. 외국인 선교사가 매번와서 그들 신앙에 필요한 책을 보여주는 거다. 당연히 첫째는 성경 교리 전례서다. 그리고 신학 철학 역사 영성 심리 성인 기도 등등.
그러나 챙겨가는 책 종류도 그다지 많지 않지만 같은 종류의 책을 늘 펼쳤다 거두었다를 반복하다보니 이제는 이들이 헌책이 되어 버렸다. 공소신자들도 처음에는 관심없는 척하다가 그냥 지나쳤겠지만 지금은 책이 헐어서 헌책인줄알고 별 관심없어 시큰둥해진 듯하다. 그나마 관심을 가지고 구입하는 책은 단연 성경이 아니라 저렴한 소교리서와 일상기도서다. 그래서 교리서와 기도서는 여유있게 준비해간다.
그런데 도서선교를 할 때면 꼭 나를 따라다니는 성경구절이 있다. 요한2,16에서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요한2,17에 "당신 집에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제자들이 떠올린 이 말씀은 시편69,10 "당신집에대한 열정이 저를 불태울 것입니다"라는 시편 말씀에서 나왔는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 시편 말씀을 설교를 통해서 가르치지않고 끈으로 만든 채찍으로 성전에 들어앉아 있던 환전상들과 장사꾼들을 내쫓으시며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라고 호통치자 제자들의 뇌리 속에 잠재되있던 성경말씀이 소름돋치듯이 살아났던 이야기다.
이렇듯 평소에 무엇을 보고 듣고 간직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어떤이의 의외의 행동에 대한 깨달음 또한 각각 다르게 일어남은 당연할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에 새겨진 글자는 행동하는 말보다 느리지만 변함없이 존재하는 소금과 같아서 요리사의 솜씨에따라 다양한 맛을 내는 원천이 되기때문이다. 이럴때 좋은 습관으로 인해 마음에 새겨진 좋은 문구들은 결의를 다지는 효과를 내게되는데 우리가 결의를 다지게되면 허물지 않았지만 허물었다가 다시 세운 효과를 내게되고 또 죽지 않았지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효과를 내게 되는 이치다. 이렇듯 좋은 습관은 의외의 행동에대한 우리의 열정이 부끄럽지 않도록 한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 파는 이들을 내쫓기 시작하신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사고파는 행위는 온전하게 봉헌하고자 하는 마음에 사적인 욕심을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져온 예물을 있는 그대로 내어 드리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다 같이 정성스런 봉헌물인데 가겪표를 붙이는 순간 어떻게 됩니까? 본래의 모습을 변질시켜서 봉헌자로 하여금 죄책감을 조장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께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성전에 봉헌하도록 허락하십니다. 성전은 당신의 몸과 같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봉헌하는 모습을 담은 좋은 예화가 있어서 소개해드릴까합니다. “두 물동이”라는 예화입니다.
어느 시골에 물장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긴 막대 양끝에 각각 물동이를 걸어서 물을 지어날랐는데 그의 오른쪽 물동이는 온전한 반면에 왼쪽은 금이간 물동이였다. 그래서 물장수는 금간 물동이가 더 벌어지지 않게 철사로 엮어서 사용을 했습니다. 날마다 새밋가에서 물을 길어 목적지에 다다르면 이 금이간 물동이에 물은 절반밖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에 물장수는 항상 물값으로 두동이가 아니라 한동이 반 값밖에 받아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물을 담아 내는 삼년동안 온전한 물동이는 자부심을 느꼈지만 금간 물동이는 뭔가 씁쓸하고 허전한 마음에 괴로움을 감출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금이간 물동이가 물장수에게 자기의 괴로운 심경을 고백했습니다. "저 물동이가 삼년동안 한방울의 낭비도 없이 자기 임무를 완수하는 동안 나는 가까스로 절반 정도 밖에 채우지 못했어요. 그것도 내 능력이 아니라 당신의 빠른 발걸음 덕분이었지요. 그래서 지금 내 자신이 염치없고 당신께 미안해요." 그러자 물장수가 금이간 물동이에게 말했다. "나는 네가 더 자랑스럽다. 저 길가 왼편에 피어있는 꽃들을 보아라. 그들은 삼년동안 네가 흘린 물방물로 오늘도 저렇게 활짝 웃을 수 있지 않니. 그래서 나 또한 그동안 저토록 환하게 미소짓는 꽃들을 거두어 내 주님의 제단에 기쁘게 바칠 수 있었어. 그 기쁨의 가치는 엄청나서 값으로는 환산할 수 없어. 모두 네 덕분이야. 고마워 금간 물동이야!!”
있는 그대로를 잘 봉헌하는 마음은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게하는 비결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몸을 정화하는 것은 곧 거룩한 성전을 정화하는 것이됩니다. 비록 우리의 몸은 예수님의 몸이 아니지만 예수님을 모시는 사람이라면 성전을 정화하듯이 우리 몸을 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곧 다가올 대림을 준비하는 시기에 특히 우리의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을 봉헌 할 수 있도록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동정의 시간 정결의 시간을 잘 살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