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연중제27주간 월요일 루카10,25-37 영원한 생명(20231009 알베리오네)

jasunthoma 2023. 10. 9. 06:52

오늘 복음에서는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인가? 그리고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아가페 사랑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사랑 아가페는 어떻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대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웃은 자기 형제자기 동족자기동포자기 민족을 말합니다. 이방인이 아닙니다. 이방인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다만 마태오5,43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여라하신 말씀의 원수를 미워하라는 표현을 쓰신 것은 네 이웃을 사랑하여라고 가르치기 위해서 그 당시 아람인들이 상투적으로 흔히 쓰던 표현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라고 예수님께서는 먼저 인용하시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 어디에도 원수를 미워하라거나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하느님 사랑 아가페를 하기위해서 중요한 말씀이 뭐라고 했습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마음 목숨 힘 정신이라고 했습니다. 이 네가지를 다할 때에 하느님 사랑인 아가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아가페에 도달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 즉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요한복음 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요한5,39“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그렇다면 요한복음에서는 어떻게 나옵니까???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어떻게 증언하셨습니까??? 당신 자신을 일컬어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길 진리 생명은 성바오로수도회 영성의 핵심이 되는 말씀인데 복자 알베리오네는 이 말씀을 성삼위의 구조처럼 의지-정신-마음에 연결시켰습니다. 길은 (성부==의지)에 진리는 (성자=정신=지성)에 생명은 (성령=감정=마음;프시케=목숨=영혼)에 결부시켰습니다. 그런데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일컬어 말씀하실 때에는 항상 길진리생명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복자 알베리오네는 진리-길-생명이라고 알려줍니다. 왜냐하면 복자 알베리오네가 생각하기에 예수님이 당신을 지칭할 때에는 항상 길이 우선하여 길진리생명으로 순서가 변하지 않지만 인간에게 있어서는 진리인 지성-정신이 항상 맨 처음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또한 오늘 복음에서 중요하게 머물러볼 부분도 정신입니다. 왜냐하면 이 정신이라는 말은 율법에서는 가르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신에 관하여 오늘 복음을 다시 읽어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찾아온 율법교사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하느냐고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되묻습니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그러자 율법교사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한다하였습니다이 말씀은 어디에 나오는 말씀입니까??? 신명기 6,5에 나옵니다. 그런데 신명기에는 조금 다르게 나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네가지를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하였는데 신명기에는 세가지만 나옵니다. 오늘복음에서 네가지는 무엇입니까??? 첫째 마음둘째 목숨셋째 넷째 정신입니다. 그런데 신명기6,5에서는 마음과 목숨과 힘으로 세가지만 나옵니다. 정신은 신명기에서 나오지 않는 단어입니다. 그렇지만 이 정신은 공관복음에서는 모두 소개되는 아주 중요한 단어입니다. 정신은 디아노이아스διανοίας로 되어있는데 이 디아노이아스는 목적 생각 뜻 의도 의견 관념 주장 이해 지능 총명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디아노이아스의 어원은 디아노애오마이διανοέομαι는 접두사 디아δια와 노애νοέ 그리고 인칭어미 오마이ομαι로 나누어지는데 가운데 노애의 기본형 노애오νοέω는 인지하다 관찰하다 알아차리다 보다 바라보다 생각하다 가정하다 판단하다 고안하다 준비하다 고치다 수선하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정신 디아노이아스 διανοίας 에는 준비하고 고안하고 고치고 수선하여, 판단하고 가정하고 생각하고 바라보고 알아차리고 관찰하고 인지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신명기에는 말하지도 않은 정신을 공관복음에서는 말하고 전해주고있는가???입니다. 왜그런가입니다. 왜냐면 정신이라는 말은 순전히 인간적인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은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창조적 선물이라면 이 정신은 순전히 이웃을 통해서 만들어진 자기 자신의 노력의 댓가이기 때문입니다. 코기토 에르고 숨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도 "정신"을 강조하기 위해서 고안했던 철학적 명재인 것입니다. / 나는 의식한다 고로 존재한다 / 인지 / 관찰 / 알아차리다 / 보다/ 바라보다 / 생각 / 가정 / 판단 / 고안 / 준비/ 고친다 / 수선 /

그래서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에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다 바쳐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의미가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에는 이웃들로부터 받은 자신의 생각 뜻 의도 의견 관념 주장 이해 지능 총명함을 다 바쳐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복자 알베리오네가 말씀하셨듯이 인간에게 있어서 만큼은 길진리생명이 아니라 진리-길-생명이라며 진리를 가장먼저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가장먼저 진리를 다하여 자기 자신을 사랑할 필요가 있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이웃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한계는 딱 거기까지 뿐입니다. 자기 자신까지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예화) 봉평막국수집 엄마와 아들

예화) 천국과 지옥에서 식사

이처럼 천국의 모습은 곧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 착한 사마리아인의 주제는 누가 내 이웃인가???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누가 우리의 이웃인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만난 이웃을 살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협력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협력한다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천상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제와 레위인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들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고 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요나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이야기는 오늘 복음과 비슷한 내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서로 닮은 이야기이면서 서로 상반된 이야기입니다.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린 사제와 레위인의 행실이 요나의 모습을 통해서 조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피하여 타르시스로 달아나려고 했던 요나의 모습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을 보고 피해서 길 반대쪽으로 갔던 사람들의 행실은 다름 아닌 요나와 같은 사람이었음을 말해주고있습니다. 요나는 이방인들을 미워했습니다. 그가 타르시스로 달아났던 것도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할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하느님이 못되고 나쁜 이방인들을 벌하지 않고 용서해주실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요나의 모습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모습의 전형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핵심인 정신이 과연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를 요나를 통해서 보여줍니다. 복자 알베리오네가 말한 정신은 무엇과 연결되어있다고 했습니까??? 길진리생명에서 인간은 진리부터 시작하는데 진리는 (성자=정신=지성)이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 정신이 어디에 머물러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지를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바로 진리는 성자=지성=정신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의 실천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랑이 가장 완전한 사랑입니다.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사랑의 실천은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 속에 이웃을 초대 해 주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완전한 인간적인 사랑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 비결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정신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무장되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