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제20주간 화요일 복되신동정마리아모후 마태19,23-30 (230822 서동성당)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예수님 말씀처럼 될까요?
여러분들은 모든 것을 버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종신서원 상본 "바로나다"(루카24,39)
예수님께서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하고 제자들에게 손과 발에 난 상처를 보여주셨습니다. ~~~
저는 종신서원을 앞두고 40일간 피정을 하면서 절반의 기간을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의 의미를 따져 물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의 의미는 근심걱정을 버린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근심 걱정은 어떻게 떨쳐 버릴 수 있을까요?
대피정을 하는 동안 뼈져리게 느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분심(근심,걱정)이 다름 아닌 내 자신이자 내 자신이 곧 십자가였다는 사실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오만 생각'이 다 난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하고 피정 중에 세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심이 얼마나 많고 시시콜콜하던지 한시간을 기도하는 동안 90개 정도의 분심이떠올랐습니다. 일분에 1개에서 3개 정도 떠오릅니다.
그럼 평균 한 시간에 90번 정도 분심이 떠오른다면 피정 중에 하루 8시간을 기도하니까 720번, 40일 피정 기간 동안에 28,800번 가량의 분심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예수마음 기도라는 것은 기도시간 외에도 걸을 때에도 화장실에서도 식사 중에도 누워서도 잠잘 때도 기도를 드려야하니까 모든 시간을 다 계산하면 오만번의 분심이 충분히 넘을 것입니다.
인간은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자존감을 버리면 대부분의 근심 걱정은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예수님 때문에 혹은 복음 때문에 죽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 자존심 때문에 죽음을 택하는 것입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받은 상처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입니다.
모세의 모친은 모세를 몰래 숨겨서 키우지 않고 물에 띄어 버림으로써 모세를 다시 얻었습니다.
파라오의 명령으로 어머니와 아들이 궁지에 몰렸을 때에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버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만을 버린 것이 아니라 자기 자존심도 버렸습니다.
모세를 버리고 자신은 모세의 유모로 들어감으로써 모세를 휼륭하게 키울 수 있었고 또한 자기 아이를 직접 키우면서도 유모로서 받아야 할 정당한 삯도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종신서원 성구를 루카24,39의 "바로나다"를 택했던 이유는 대피정을 하는동안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기 위해서 내 자존감을 버린 자아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일은 다름 아닌 자신을 버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자존감을 버리되 허투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 예수님을 위해서 내 자존감을 버릴때 우리는 천사들도 부러워하는 사도들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자존감이 곧 내 생명이라고 여긴다면 하느님이 주신 생명은 소중한 것이어서 세상 그 무엇도 바꿀 수는 없지만
단지 복음 때문에 또는 예수님 때문에 바꿀 수는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더욱더 소중히 여길 수 있는 하루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