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연중제19주일 마태14,22-33 의심과 믿음(20230813 행운동성당)

jasunthoma 2023. 8. 12. 08:59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으십니다. 물은 창세기1,2을 보면 태초에 가장 먼저 있었던 피조물중에 하나입니다. “. .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여기서 하느님의 영이 감돌고 있었다에서 감돌다는 말은 소용돌이 치는 폭풍을 의미합니다. 이는 바람기둥과도 같은데 바람을 동반한 폭풍입니다. 허리케인/토네이도 즉 태풍 과 같은 폭풍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영이 감돌고 있는 장면에서 하느님의 영은 하느님의 입김, 하느님의 얼, 하느님의 강한 바람을 의미하는데 다시 말하자면 이 장면은 창세기 이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며, 이 모습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어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장면을 떠올려줍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호수를 건너가지 못하고 파도에 시달리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가는 장면은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았던 것과 같은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갔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맞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어나던 곳으로 예수님이 다가갔다는 말입니다. 즉 파도보다 더 센 폭풍이 제자들이 시달리던 곳으로 다가가는 장면과 흡사합니다. 예수님이 가까이 오기 전에는 기껏해야 맞바람에 파도가 치는 정도였는데 예수님이 가까이 다가오시자 맞바람에 이는 파도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파도는 숨 죽이듯이 사라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 예수님의 모습은 흡사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도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복음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마라그러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이에 예수님께서 오너라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습니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져서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주님, 저를 구해주십시오이에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과 베드로가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습니다.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자 여기에서 특이한 점은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가는 장면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하니 예수님께서 오너라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수 있습니까??? 결코 걸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명령하시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곧 베드로는 거센 바람을 보고 그만 두려워져서 물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 저를 구해주십시오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손을 잡으시고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물 위를 걷다가 물에 빠져들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이유를 거센 바람때문이 아니라 베드로가 의심했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여기서 의심하다는 말은 그리스어 성경에 디스타사스δίστασας로 되어있는데 디스타사스의 원형 디이스테미διίστημι는 나누다, 분할하다, 가르다, 분리하다, 떨어져있다, 다르다, 벌어지다, 차이나다, 갈라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이 약한자는 의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야고보서6,1의 말씀처럼 의심하는 자는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물결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지니고 있던 믿음이 나누어지고 분할되고 편가르게되고 분리되고 떨어져있게되고, 달라지고 벌어지고 차이가나게되고 갈라지게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베드로는 물 위를 걷다가 물에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이렇듯이 믿음이 약한데다가 의심까지하게 되면 제아무리 하느님의 명령이라고 해도 그리고 그 명령을 따른다고 해도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렇게 약한 믿음과 의심에 관한 가르침은 오늘 복음 이후에도 두 차례에 걸쳐 더 나옵니다. 마태17,20에서 제자들이 마귀들린 아이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그리고 마태21,21에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 무화과나무에 일어난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하여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기도할 때에 믿고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자 그렇다면 이 믿음이 무엇이길래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말씀일까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믿음은 과연 무었일까요???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에 관하여 이렇게 가르쳐줍니다. 좀 긴 내용이지만 들어볼 만한 내용이기에 최대한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믿음으로써 아벨은 카인보다 나은 제물을 하느님께 바쳤고 그리하여 아벨은 의인으로 인정받고 하느님께서는 아벨의 예물을 인정해주셨습니다.” “믿음으로써, 에녹은 하늘로 들어올려져 죽음을 겪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하늘로 들어 올리셨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습니다.” “믿음으로써,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관하여 지시를 받고 경건한 마음으로 방주를 마련하여 자기 집안을 구하였습니다.”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한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들의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시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밖에도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고, 이사악은 야곱에게 축복해 주시고, 야곱은 요셉의 아들들에게 하나하나 축복해 주시고, 모세는 이집트의 일시적인 향락을 누리기보다 하느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받는 길을 선택하였으며, 임금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광야에서 파스카축제를 지내고 홍해를 마른땅처럼 건넜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레 동안 예리코 성벽을 돌았으며, 라합, 기드온, 바락, 삼손, 입타, 다윗,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은 믿음으로 여러 나라를 정복하였고 정의를 실천하였으며, 그들은 사자들의 입을 막았으며, 맹렬한 불을 껐고 칼날을 벗어났으며, 약하였지만 강해졌고 전쟁 때에 용맹한 전사가 되었으며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죽었다가 부활한 식구들을 다시 맞아들인 여인들, 부활을 누리기 위해서 석방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고문을 받았던 이들,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결박과 투옥을 당한 이들, 돌에 맞아 죽기도하고 톱으로 잘리기도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한 이들, 그들은 궁핍과 고난과 학대를 겪으며 양가죽이나 염소 가죽만 두른 채 돌아다녔습니다.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인정을 받기는 하였지만 약속된 것을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에 우리 없이 그들만 완전하게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이 믿음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구약의 선조들이 죽을 때까지 약속된 것을 얻지 못하게 하시고 오늘날까지 때가 차기를 기다리도록 배려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그 믿음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이 베드로를 물 위로 걸어오도록 명령하시고 베드로의 손을 잡으시고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치는 그러한 모습을 보고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이는 이제야 예수님이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을 수 있게 되었음에 대한 감사와 찬양입니다. 우리도 매일의 일상속에서 우리곁에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믿고 경배드리며 찬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