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루카1,39-56 (230531; 0815; 240531; 1222 바딸// 행운동// 대구협력// 스승)
루카1,39-56
오늘 복음에서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고 전해줍니다. 그리스어 성경본문에 의하면 “그 무렵 마리아는 일어났다, (그리고) 서둘러 길을 떠나 유다 산악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길을 떠나”가 그리스어 원문에는 "마리아는 일어나, 서둘러 길을 떠나"로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한글 번역 성경에는 마리아가 일어났다는 말이 생략되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생략된 "일어나"에 해당하는 단어는 “아나스타사ἀνάστᾱσα”인데 아나스타시스ἀνάστασις)의 어원 “아니스테미ἀνίστημι”는 “일으키다 세우다 깨어나다 부활시키다 되살리다 회복시키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아나스타시스는 모두 열세번 이상 사용되었는데 그중 많이 사용된 곳을 보면 요한복음에서 네번 그리고 루카복음에서 네차례 사도행전에서 다섯차례입니다. 요한11,23.24.25; 루카1,39; 4,38; 17,19; 23,5; 사도5,17; 9,11; 10,13; 11,7; 22,10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사용된 본문 내용을 보자면 이런 내용입니다. 라자로를 살리실 때에 대목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아나스타시스)이다’하시니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아나스타시스)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아나스타시스)을 알고 있습니다’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아나스타시스)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가 길을 떠났다는 말은 마리아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부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다시 살아나서 일어났으니 길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이죠. 다시말하자면 죽었던 마리아가 다시 살아나서 길을 떠났다고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길을 떠나 유다 산악지방으로 가는 장면과 장차 부활하실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 갈릴레아로 가는 장면을 함께 떠올려볼 수 있겠습니다. 겹쳐지는 이 장면들을 떠올려 보면, 성모님과 예수님, 두 분이 서로 만나게 되는 장면을 묵상해볼 수 있겠습니다. 어떻게 만나게 됩니까???
먼저 마리아는 동정녀로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기전에 죽으셨던 것처럼 마리아도 마찬가지로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과 그리고 약혼한 요셉 사이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셨습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린 좌도와 우도 사이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당대 유능한 두 바리사이 니코데모와 요셉,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리트라 쯤 가져왔던 니코데모와 당신을 자기 소유의 무덤에 모신 아리마태아 요셉 사이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일어나서 부활했습니다. 갈릴레아에서 부활하여 유다 산악지방에 있는 아인 카렌(Ain karen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6Km 정도 거리에 있는)이라는 곳으로 서둘러 떠났습니다. 거기에 살고 있던 엘리사벳과 즈카르야에게 당신의 부활한 모습을 드러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당신을 드러내셨습니까???? 당신의 부활하신 모습은 천사와 마리아 막달라 사이에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즉 예수님은 무덤에 묻히셨지만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길을 떠났던 마리아 막달레나와 천사 사이에서 부활하시어 갈릴레아로 가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활한 성모님과 부활한 예수님이 서로 교차하고 이스라엘과 유다가 교차하고 두 죄수와 두 바리사이 제자와 엘리사벳과 즈카르야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와 천사가 서로 교차합니다. 그렇다면 성모님이 당신의 부활을 선포하러 유다 산악지방 엘리사벳의 집으로 가실 때 장차 다가올 먼 훗날 당신의 아들 예수님은 갈릴레아로 가시면서 부활을 선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마리아가 일어나 유다 산악지방으로 갈 때에 마리아는 앞으로 펼쳐질 당신 아들 예수님의 부활을 미리 목격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갈릴레아로 되돌아가실 때에 당신의 모친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셨던 모습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천사가 마리아에게 알려준 주님탄생 예고는 마리아의 사형선고이면서 동시에 주님이 부활하리라는 주님 부활 예고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 이전에 있었던 천사가 알려준 주님탄생예고(성모영보)가 마리아에게는 죽음예고였다면 오늘 복음에 선포된 마리아의 노래는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마음 기뻐 뛰노나니...”는 우리 주님의 부활찬송이나 다름없습니다. “용약하라 하늘나라 천사들 무리... 환호하라 하늘나라 신비..,”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로 부활을 떠올리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는 죽기전에 이미 부활했을 수도 있습니다.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을 통해서 그리고 부활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련의 과정, 예루살렘에서 갈릴레아로 돌아가는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이미 부활했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내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부활 시키시는 분이 그렇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공로를 다해서 죽었더라도 살아날 때에는 스스로 살아나지 못합니다. 반드시 나를 일으켜 세우실 분이 죽은 내 육신을 다시 부활 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한 분이신 하느님이시자 삼위로 일치하시는 하느님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마리아는 일어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던 것입니다. 즉 일상을 벗어난 부활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마리아가 서둘러 떠난 곳이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기억해야하겠습니다. 그것은 특별한 순례가 아니라 일상에서 반복되는 방문이었습니다. 장소를 찾아간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던 성전, 즉 몸의 성전이며 마음의 성전이며 정신의 성전인 우리의 가정이자 소속된 공동체입니다. 오늘 하루 (복되신동정마리아방문축일// 성모승천대축일)에 그러한 우리의 성전인 우리가정을, 이 공동체를 방문하신 모든 분들에게 성모님의 은총이 풍성한 하루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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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1,39-45 (20241222 스승)
오늘 복음에서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고 전해줍니다. 그리스어 성경본문에 의하면 “그 무렵 마리아는 일어났다, (그리고) 서둘러 길을 떠나 유다 산악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길을 떠나”가 그리스어 원문에는 "마리아는 일어나, 서둘러 길을 떠나"로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한글 번역 성경에는 마리아가 일어났다는 말이 생략되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생략된 "일어나"에 해당하는 단어는 “아나스타사ἀνάστᾱσα”인데 아나스타시스ἀνάστασις)의 어원 “아니스테미ἀνίστημι”는 “일으키다 세우다 깨어나다 부활시키다 되살리다 회복시키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가 길을 떠났다는 말은 마리아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부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다시 살아나서 일어났으니 길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이죠. 다시말하자면 죽었던 마리아가 다시 살아나서 길을 떠났다고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길을 떠나 유다 산악지방으로 가는 장면과 장차 부활하실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 갈릴레아로 가는 장면을 함께 떠올려볼 수 있겠습니다. 겹쳐지는 이 장면들을 떠올려 보면, 성모님과 예수님, 두 분이 서로 만나게 되는 장면을 묵상해볼 수 있겠습니다. 어떻게 만나게 됩니까???
먼저 마리아는 동정녀로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기전에 죽으셨던 것처럼 마리아도 마찬가지로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과 그리고 약혼한 요셉 사이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셨습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린 좌도와 우도 사이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당대 유능한 두 바리사이 니코데모와 요셉,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리트라 쯤 가져왔던 니코데모와 당신을 자기 소유의 무덤에 모신 아리마태아 요셉 사이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일어나서 부활했습니다. 갈릴레아에서 부활하여 유다 산악지방에 있는 아인 카렌(Ain karen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6Km 정도 거리에 있는)이라는 곳으로 서둘러 떠났습니다. 거기에 살고 있던 엘리사벳과 즈카르야에게 당신의 부활한 모습을 드러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당신을 드러내셨습니까???? 당신의 부활하신 모습은 천사와 마리아 막달라 사이에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즉 예수님은 무덤에 묻히셨지만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길을 떠났던 마리아 막달레나와 천사 사이에서 부활하시어 갈릴레아로 가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활한 성모님과 부활한 예수님이 서로 교차하고 이스라엘과 유다가 교차하고 두 죄수와 두 바리사이 제자와 엘리사벳과 즈카르야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와 천사가 서로 교차합니다. 그렇다면 성모님이 당신의 부활을 선포하러 유다 산악지방 엘리사벳의 집으로 가실 때 장차 다가올 먼 훗날 당신의 아들 예수님은 갈릴레아로 가시면서 부활을 선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마리아가 일어나 유다 산악지방으로 갈 때에 마리아는 앞으로 펼쳐질 당신 아들 예수님의 부활을 미리 목격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갈릴레아로 되돌아가실 때에 당신의 모친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셨던 모습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죽음에서 일어나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길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이끄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성령께서 가져다 주시는 은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일어남이 희망을 향한 결단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