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부활제2주간 월요일 요한3,1-8 (20230417 바딸/ 250428 부산협력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랬더니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어떻게 한 번 태어난 사람이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먼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리고 이어서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이라는 말씀을 이토록 상세하게 풀이해서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하고 생각해봅니다. 못 알아들으니까 그랬겠지요. 니코데모가 당연한 말씀을 못 알아들으니까 상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기도는 안하고 맨날 성경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뭐가 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모르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여기서 “위로부터”라는 말씀은 히랍어로 “아노탠ἅνωθεν”으로 써졌는데요. 요즘 희랍어 사전에 아노탠은 “아예/새로/다시/또” 등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예 태어나지 않으면/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또 태어나지 않으면”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서적으로 “위로부터ἅνωθεν”를 번역한다면 “높은데서”라는 의미로 번역할 때에 가장 직역에 가까운 설명이 됩니다. 즉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은 “높은데서 태어나지 않으면”이 됩니다. “높은 데서”로 읽게 되면 어떻습니까??? 무슨 장면이 떠오릅니까??? 엘리야가 카르멜 산에서 바알의 예언자들과 대결하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으세요????
실제로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하고 말씀하실 때에 물은 자주 성령을 부르는 상징이었습니다. 에센에파를 비롯해서 예수님 시대 이전에 활동했던 꿈란의 예언자들은 성령을 부르기 위해서 물을 사용했습니다.
여기서 성령은 히브리어로 “루아흐”인데요 루아흐는 바람(미풍brisa), 공기, 호흡(숨결),을 의미합니다. 즉 바람, 공기, 호흡, 숨결로 태어나기 위해서 상징적으로 물을 사용했다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태초에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주실 때에 영인 숨결, 호흡, 공기, 바람입니다.
사람이 생명으로 즉 영으로 태어나기 위해서 물이 필요했습니다. 바람에 날리던 흙먼지였던 인간 육신을 하느님께서 어떻게 개켜서 만들었습니까??? 물이 필요했습니다. 아무리 하느님이라도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물로 개켜서 진흙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영을 당신의 숨결을, 호흡을, 바람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그때에 한 육신이 생명을 지닌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니코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리고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이어서 또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라고 거듭 거듭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기 위해서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시고 산상설교에서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하고 설교하실 때에 우리의 육신이 어떻게 새로 태어날 수 있는지를 이미 알려주셨습니다. 회개하고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일이야말로 영으로 태어나서 하느님의 나라를 보는 열쇠인 것입니다.
정말 먼지가루가 되는 심정, 깨어지고 부서지는 심정, 이 모두는 우리가 영으로 태어나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은총의 선물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모두 영으로 태어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