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부활팔일축제 금요일 요한21,1-14 (230414 스승/ 240405 성바/ 행운동성당)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번째로 나타나십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두 모였을 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일곱제자에게만 나타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다 모였을 때 나타나시지 않고 일곱제자에게만 나타나셨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티베리아호숫가, 즉 갈릴레아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티베리아 호수가에 모여든 일곱제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유다 예루살렘 지역에 남아있었거나 아니면 그 주변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여기서 일곱제자는 일곱지파를 상징합니다.
그러면 일곱지파와 관련하여 여호수아기를 잠시 떠올려보는 것도 오늘 복음을 묵상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기 18장에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에 나머지 일곱지파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지파들에게 여호수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언제까지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차지하러 가지 않고 꾸물거릴 작정이냐? 내가 보낼 사람들이 일어나 저 땅을 두루 돌아다니며 자기들이 차지할 상속재산에 따라 지도를 그려 나에게 가져오도록 하겠다. 그러면 저 땅을 일곱 몫으로 나누어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아직 땅을 차지하지 못한 일곱지파중에 대부분이 마지못해 갈릴레아 호숫가를 중심으로 땅을 나누어 받게 됩니다.
갈릴레아 호숫가는 오늘 복음에서 일곱제자들이 모여서 고기를 잡으러 갔던 티베리아 호수와 같은 호수입니다. 이스라엘의 각지파들이 예루살렘 지역을 중심으로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방인들과 어울려 살아야 했던 갈릴레아 호수 주변의 땅들에 관해서는 상속받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지파들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일곱제자인 시몬 베드로를 비롯하여 고기잡이를 나섰던 제자들은 땅을 상속받지 못한 이스라엘의 나머지 일곱지파를 상징합니다. 그들이 옛날 여호수아 때 갈릴레아 지역으로 가기를 꺼려했듯이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기에 가서도 땅을 선택하지 않고 물을 선택했습니다. 땅을 차지하기보다 물을 차지하기를 원했습니다. 땅을 차지하려 하다가 예수님 꼴을 당하느니 차라리 주인 없는 물위에서 고기낚는 어부로 살아가는 편이 훨신 낫겠다고 마음 먹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처럼 그들은 유다 예루살렘에서 도망치다시피 빠져나와 서둘러 갈릴레아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땅에서 처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이 그들에게는 아직까지 눈에 선했기 때문입니다.
갈릴레아로 돌아가서 먼저 시몬 베드로가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네”하자 그들도 함께 따라나섰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자 그제야 예전 어부 시절의 실력이 발휘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라고 하여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물을 오른쪽에 던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오른쪽은 "덱시오스"인데 덱시오스는 "받아들이다"라는 "데코마이"의 어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졌다는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성모님의 말씀 "그가 시키는대로 하여라"라는 말씀을 받아들였던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부활을 목격하는 것 이상의 체험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일때에 물고기가 그물에 가득 걸려든 것처럼 우리의 사도직과 복음선포도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에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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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는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백쉰셋이란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새로운 제자들의 숫자로 볼 수 있습니다. 유다인들이 믿었던 옛 교회가 아닌 부활하신 예수님의 교회, 새로운 교회를 상징하는 숫자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상징적인 숫자들이 많이 나옵니다. 어떤 상징적인 숫자들이 있을까요??? 0, 1, 2, 3, 4, 5, 6, 7, 8, 9, 10, 11, 12. . . 뭐 숫자는 모두 상징성을 띤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를들면 12는 10+2, 17은 10+7, 77은 70+7 그렇다면 153이라는 숫자는 150+3이 되겠지요. 150이라는 숫자는 시편의 수와도 동일합니다. 최소의 자치권을 지닌 완전한 조직을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예를들면 분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군단, 군대(육,해,공), 삼군사령과 참모가 있는데 중대단위 즉 150명까지는 가족처럼 어울리게 됩니다. 1개 분대는 16명, 1개 소대는 3개 분대를 인솔하여 48(50)명, 1개 중대는 3개의 소대를 인솔하여 144(150)명, 1개 대대는 3개의 중대를 인솔하여 450명, 1개 연대(여단)는 3개의 대대를 인솔하여 1,350명, 1개의 사단은 3개의 연대를 인솔하여 4,050명, 1개의 군단은 3개의 사단을 인솔하여 12,150명, 군대는 3개 이상의 군단을 인솔하여 36,450명 이상, 삼군사령과 참모는 3개의 군대(육,해,공군)를 인솔하여 109,350명 이상의 상징적인 숫자가 됩니다. 여기서 좀 더 중요한 상징적인 숫자는 마태오복음 26장,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잡히시던 장면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하는데요 거기에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내가 아버지께 청할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 청하기만 하면 당장에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내 곁에 세워주실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의 상징은 뭡니까??? 1개 군단이 몇 명이라고 했습니까??? 12,150명이었죠. 그러면 열두 군단은 얼마나 됩니까???? 145,800명이 되겠죠. 무슨 상징적인 숫자가 떠오릅니까???? 144,000명 묵시록에서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 위에 서 있던 이들, 즉 열두 군단의 천사들 무리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위에서 150이라는 숫자는 시편의 수와도 동일하다고 하면서 최소의 자치권을 지닌 완전한 조직을 상징하는 숫자를 뭐라고 했습니까???? 144명이었죠. 분대 16명, 소대 48명, 중대 144명 즉 144명씩 천개의 무리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천개의 천사들의 공동체를 상징하는 숫자라는 것이죠.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끌어올린 물고기의 숫자 153백쉰셋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물에 걸렸던 물고기 백쉰세마리 또한 이 천사들의 무리에 속하게 되는 것이죠. 이 물고기의 숫자 또한 부활하신 주님의 교회를 이끌어갈 천사들의 무리를 상징하는 숫자로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도 부활하신 어린양이신 주님의 천사들로서 기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