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제30주간 화요일 루카13,18-21 (성바오로)
보리밟기를 알고 있습니다.
심어서 가꾸는 것이 아니라 뿌려 놓고 자라나면 밟습니다.
이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경작하는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고구마나 감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새순들을 잘라버립니다.
새순은 그 생명체의 희망이자 구원인데 그것들을 잘라버리면 오히려 뿌리열매가 더 잘 영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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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먼저는 겨자씨와 같은 하늘나라입니다.
겨자씨를 가져다가 정원에 심었다고 했는데
공동번역에 보면 밭에다가 뿌렸다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땅에 뿌려 두기만 해도 저절로 싹이 트고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겨자씨가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고 합니다.
즉 그많큼 많은 열매를 맺었다는 말입니다.
한 알을 십었지만 그 어느 식물보다 더 많은 소출을 낸다는 의미가 아닐까합니다.
겨자씨가 자라면 새들이 둥지를 틀고 걱정없이 살 수 있을 많큼 풍성한 모습이 하늘나라와 같다는 말씀이 아닐까합니다.
둘째비유는 누룩을 밀가루 서말 속에 집어 넣어서 온통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을 것같은 밀가루가 살아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어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 곳에 누룩이라는 협력자, 협조자, 조력자가 들어가자 생동하는 모습.... 예수님은 이러한 모습이 곧 하늘나라의 모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것을 뿌리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흔히 무엇을 뿌린다고 할 때에는 흩어 버려서 낭비한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씨앗은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양식으로 쓰이는데도 그것을 땅에 뿌린다는 겁니다.
그것도 토실토실하고 알찬 것을 골라서 뿌립니다.
좋은 열매를 땅에 뿌려 버린다는 것을 우리는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싹이 움튼 것을 밟아 버리는 것도 이해할 수 없구요.
그런데 누룩은 알곡에서 싹이 움터 나오면 곧바로 눌러서 씨앗을 바수어 버리지 않으면 누룩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알곡이 겪는 고난은 더 큰 희망을 향한 것이고 결국 하늘나라를 향한 고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희망이 허물어지면 새로운 희망으로 채워짐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에 관해서 모릅니다.
우리가 뿌린 씨앗에 하느님의 나라가 어떤 모습으로 담겨져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모르면서 확신에 차있습니다.
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하지만 그 씨앗은 우리의 믿음과 확신이 없이는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계속해서 이야기 하듯이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이 주신 것을 기쁘게 나누어주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