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성주간 월요일 요한12,1-11 소중한 가난(딸)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의 일곱표징 중에서 마지막표징의 끝부분에 해당되는 내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표징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 라자로를 살리시는 표징인데 파스카 축제 엿새전이었다고 복음은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파스카 축제 엿새전이었으면 주간 첫날에 해당됩니다.
요한복음은 시작부터 세례자 요한이 등장하는데, 세례자 요한은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세차례에 걸쳐서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그 첫날부터 요한은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또 이렇게 증언합니다.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이렇게 일러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시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는 물이 아니라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릿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며 자기는 예수님의 발을 한사코 외면하였지만 오늘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어 씻어드렸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말로써 예수님을 증언했다면 마리아는 행동으로 증언한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물로써 예수님의 머리에 세례를 베풀었다면 마리아는 향유로 예수님의 발에 세족례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께 언제나 존경과 사랑을 드리지만 예수님의 발에까지 존경과 사랑을 드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곁에 있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가난한 이들보다 더 가난한이가 바로 예수님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제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마리아는 그러한 예수님의 면모를 줄곧 보아왔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친히 가난한이들 중에 가장 가난한 이였음을 몸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겉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의 겉모습이 아니라 예수님의 속마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분의 발에 향유를 부어 자기 머릿카락으로 닦아 드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언제나 너희곁에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곁에 있지 않을 것이다 라고 속마음을 털어놓으시는 예수님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였던 이는 제자들이 아니라 마리아였던 것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예수님께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