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사순제3주간 월요일 루카4,24ㄴ-30 귀향(스승)
오늘 제1독서 열왕기하권5장에서 엘리사는 나아만과 그의 군사들과 병거앞으로 심부름꾼을 보내어 이렇게 전했습니다.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번 몸을 씻으십시오. 그러면 새살이 돋아 깨끗해질 것입니다"
그랬더니 나아만은 화가 나서 발길을 돌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당연히 그가 나에게 나와서서, 주 그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병든곳 위에 손을 흔들어 이 나병을 고쳐주려니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는 집밖을 나와 보지도 않고 심부름꾼을 시켜고작 요르단강에 가서 몸을 씻으라고 전하는 이 상황을 내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하고 생각하였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마스쿠스의 아바나 강과 파르파르 강은 이스라엘의 어떤 물보다 좋지 않으냐?? 그렇다면 거기에서 씻어도 깨끗해 질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엘리사는 왜 나아만 장군에게 요르단 강에 가서 몸을 씻으라고 했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엘리사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강이 요르단 강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아니면 엘리사는 다마스쿠스를 가보지 못해서 그곳의 강물들이 어떤지 몰랐던 것일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자주 쳐들어와서 보아왔던 요르단 강물이 그들의 강물에 비해 그다지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엘리사만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제 귀향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마지막 자막이 끝나도록 끝까지 본 영화는 처음입니다.
돌아갈 귀자를 쓰지 않고 귀신 귀자입니다. Spirits Homecoming
귀신들의 고향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풀어내기 난해한 다루기 어려운 과거사를 씻김굿이라는 모티브로 잘 조명해낸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할머니는 지금 내가 아픈것은 꽤병이다고 했습니다.
생의 마지막날이 다가오자 고향으로 돌아가 그날 헤어질 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아픈 기억을 깨끗이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시작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그날의 그 아픈 기억을 다시 불러내어 그 상처를 씻어주고 위로하고, 그 기억이 깨끗해 질 때까지 되살려내기 위함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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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가 나아만에게 요르단강에 가서 일곱번 몸을 씻어라고 한 것은 요르단 강물이 세상의 그 어떤 강물들 보다 더 크고 수려하고 더 깨끗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온갖 탐욕과 모략과 폭행이 발을 담갔던 강이 요르단 강이었고, 또한 그들의 강물에서가 아니라 요르단 강에서 깨끗이 씻어져야 할 그 만의 아픈 기억이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나아만도 처음에는 요르단 강물에 들어가서 몸을 씻고 싶지 않았으나, 그가 살아온 날들을 떠올리기 시작하자 자신의 허물이 요르단강에서 씻어져야할 분명한 이유를 깨닿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자라신 고향 나자렛으로 가시어 회당에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도 사렙타의 과부와 나아만처럼 고향에서 씻으셔야할 기억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화가 잔뜩난 고향사람들은 그 기억들을 회피하고 싶었고 또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시어 그들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십니다.
성난 파도와 같은 그들의 분노를 회피하지 않으시고 그들 한 가운데로 들어가십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사순의 의미를 좀 더 깊이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