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대림제2주간 월요일 성암브로시오기념 루카5,17-26 가르침만으로도(성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가지 방법으로 병자를 고쳐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오늘 복음 서두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시고 계셨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에는 언제나 인간 해방의 메시지가 포함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멍에를 벗겨주는 가르침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그러한 가르침만으로도 병이 고쳐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 믿음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 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의 대부분은 하느님의 능력으로 중풍병자의 병을 고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저사람은 누군데 인간이면서 저런 분에 넘치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가???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이 아닌 누군가가 죄를 용서해 주었기때문에 죄를 용서 받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병자의 상태가 위독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누군가는 주님이시자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제가 사죄경을 외울때처럼 "나는 당신의 죄를 용서합니다" 하고 말해야 옳다는 것입니다.
용서받았다 가 아니라 용서합니다 라는 얘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죄를 용서받았다" 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쉽다고 생각하십니까???
각자의 성향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하고 말하는 쪽이 훨씬 번거롭고 어려울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쉬운 방법으로 중풍병을 고치는 길이 막히게 되자 훨신 번거롭고 어려운 길을 택하셨습니다.
즉 인간의 힘으로 안통할 때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만 있다면 예수님의 가르침만으로도 얼마든지 병을 고칠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 하느님의 능력이 더해진다면 몸도 건강해진다는 것이 오늘 복음이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성암브로시오 축일이기도 합니다.
서양 4대 교부(아우구스티누스, 예로니모, 대그레고리오)중 한분이시기에 성인의 자세한 업적과 가르침은 다음에 교부학을 전공하신 수사님께로 기대하고
저는 백 암브로시오 수사님의 가르침이 있어서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25주년을 기념하는 백수사님의 가르침에 관해서 다들 새겨두고 계신 기억들이 많이들 있으시겠지만 저는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수련을 백수사님께 받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도 백수사님의 가르침을 생각해보니 딱 두가지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강론시간이면 항상 하는 말씀입니다.
"또마~~ 그만자라 쫌" 그런데 어떻게 백수사님의 강론을 듣고 졸지 않을 수 있는지. . .
그리고 첫서원을 앞두고 수도명을 정할때
"자선도마~~ 부르기 쉬운 이름이 좋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궁극적인 종착점은 죄의 용서가 아닐까 합니다.
죄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은 죄의 억압에서 풀려난다는 것이고 그것은 인간이 누렸던 본래의 모습으로 다시 자유로워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의 가르침만으로도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04/12/05 루카5,17-26
성당에서 미사드리기 전에 흔히 볼 수있는 모습이 있다.
교우들은 성당에 들어가면 제대를 중심으로
되도록 멀리 떨어져서 앉기 시작한다.
성당 다닌지 오래된 분들도, 얼마 않된 분들도 마찬가지다.
대다수가 멀리 앉고 싶어라한다.
교리서 어디를 찾아봐도 미사를 드릴 때 제대와 멀수록
더 많은 은총을 받는다고 씌여있지는 않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가까이 온 중풍병자에게
'이제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사람의 아들에게 있다'고 하시면서
자신을 둘러싼 많은 군중 가운데로 겁없이 들어온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
남의 집 지붕 기와를 벗겨내고 수많은 군중 한 가운데로 병자를 내려보낸
그 동료들의 믿음을 보고 병자를 치유해 주셨다.
움직이지 못하는 병자는 어렵지만 예수님께 가까이 갔을 때
동료들의 믿음으로 이미 죄를 용서 받고 구원되었다.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사람의 아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 군중 뒤에는
회개한 병자와 죄인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생명의 말씀을 향해 가까이 가기가 쉽지않다.
그러나 모든 난관을 뚫고 주님께 가까이가며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일' 때 사람의 아들은 용서하실 것이다.
우리가 가장 가까이서 주님을 뵈옵기를 원하고
회개한 내 마음을 주님앞에 먼저 드러내며,
그 믿음을 용기있게 실천할 때
때때로 짓는 죄를 그 때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