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제33주간 수요일 루카19,11-28 마음벌이(성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로 하신 말씀일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재물을 두고 하신 말씀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재능을 두고 하신 말씀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 말씀은 평소 가르치던 예수님의 방침과 정 반대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평소 가르침은 언제나 약하고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편에서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약자 보호의 원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치 돈이 돈을 벌게 되어있는 자본주의의 구조를 따르고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빼앗긴 사람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돈주인의 무자비한 횡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무자비한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는 비유를 드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오늘 복음 도입부에 이미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덧붙여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 같으면 "휴거"와 "종말론"에 빠져서 가진 것을 모두 바치는 사람들의 병폐를 꼬집기 위해서 이러한 비유를 들려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많은 무리들 중에서 이러한 사람들이 있지 않았을까싶습니다.
가깝게는 어제 복음에서 구원받았던 자케오도 이런 우려를 낳을 수 있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몰론 자케오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구원받고 행복해하는 자케오를 지켜보던 군중들은 그런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케오가 내어놓은 절반의 재산에 비하면 내가 지니고 있는 한 미나는 있으나 마나한 금액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세번째로 셈을 하게된 종은 자기가 받은 것을 도로 내어 놓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받은 것을 다 탕진한 종보다 훨씬 훌륭한 종입니다.
돌아온 탕자처럼 아버지의 곳간을 안팍으로 덜어먹는 놈보다 훨씬 잘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의미는 받은 것을 보관했다가 받은 그대로 되돌려주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을 필요한 이들에게 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런의미에서 본다면 세번째 셈을 하게된 종은 사람들과 담을 쌓고 단절된 생활을 하는 부류로 볼 수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셈을 하게된 종은 "재물로라도 친구를 만들어라" 라는 말씀대로 자기가 가진 재물로 사람을 사서 벌이를하는 부류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첫번째 셈을 하게 된 종은 재물로 벌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벌이를 하며 살아가는 부류로 볼 수 있습니다.
재물로 품앗이를 하기는 쉽지만 서로 마음을 나누기는 쉽지 않습니다.
재물로 벌이를 하는 사람은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수 있겠지만
마음으로 벌이를 하는 사람은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물이 앞서가면 재물이 만들어질 뿐이지만
마음이 앞서가면 재물과 더불어 사람도 함께 얻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오늘 복음이 주는 교훈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각자 받은 소중한 시간을 잘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