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나해 연중제33주일 마르13,,24-32 (성마리아재속회// 241117 반송성당))

jasunthoma 2015. 11. 15. 19:55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무화과 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 비유는 사람의 아들에 관한 비유입니다.

어느듯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줄 알게되듯이 너희도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되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가까이 온줄 알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즉 다시말하자면 "깨어 기다려라"는 말씀을 무화과 나무를 보고 그렇게 하여라 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무중에는 포도나무도 있고 참나무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무화과 나무를 보고 깨달아라 하고 말씀하셨을까요??? 그렇다면 깨어 기다리는 것과 무화과 나무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는 것도 오늘 복음을 묵상하는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기도시간이나 묵상시간에 눈을 감고 묵상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묵상할 때 눈을 뜨고 묵상하는 편입니까?? 그러면 다른 방향에서 질문을 드려보자면

혹시 묵상할때에 눈을 감고 묵상하는 것이 묵상이 더 잘됩니까??? 아니면 눈을 뜨고 묵상할 때에 묵상이 더 잘 됩니까???

기도할 때에 눈을 뜨고 있으면 은총이 쏟아지고 눈을 감고 있으면 신비가 쏟아지는 것 같습니다.

묵상과 명상의 다른점~~~

40일 피정때에 묻는기도=깨는기도 ~~~

무화과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중에 하나입니다. 4,000년 전에 이집트에서 심은 기록이 있으며 그래서 기록상으로는 가장 오래된 나무라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수메르왕조 시대인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이며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과수로 알려져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의해서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알몸이라는 것을 알게되자 무화과 나무잎을 엮어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는 대목입니다. 이 구절을 근거로 선악과는 다른 과일이 아니라 무화과 열매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하고 말씀하신 이유는 이처럼 무화과 나무는 태초부터 인류와 함께한 나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화과 나무는 인류가 눈을 뜨기 전부터 있었고 또한 눈을 뜨고 난 후에는 그들의 눈을 가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즉 인류가 잠들었을때에나 깨어있을 때에나 항상 인류와 함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또다른 측면에서 예수님께서는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들어 하느님 나라의 임박함을 전해주고자 하심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화과나무가 겉으로는 꽃을 피우지 않 듯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데에 하느님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먹고 자고 짓고 장가들고 하는 중에 하느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에 유다인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특히 랍비들은 하늘나라로 들려 올라가기 위해서 안식일 전날 저녁이 되면 요르단 강에서 목욕제계를 하고 한적한 바위에 걸터앉아 하늘을 우러러 양 손을 펼쳐들고 그들 특유의 기도에 잠겨서 깨어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천사들이 하늘과 땅 사이를 오르락 내리락 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안식일에 사람이 영혼의 세계로 들어올려진다고 믿었습니다.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와 인간을 들어올려 영혼의 세계로, 천상의 나라로 데려간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들어올리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는 분이시라는 것이 오늘 예수님의 무화과 나무 비유의 가르침입니다. 누군가를 하늘로 들어올린다면 그분은 당신 아드님이시지 결코 피조물인 인간이나 천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인간이 하늘로 들어올려진다면 그것은 먼저 하느님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어 우리가 하느님처럼 된 후에나 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들어올려지기 전에 먼저 하느님을 내 속에 맞아들여서 꽃을 피워야만 합니다.

꽃을 피우되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꽃을 피우는 무화과나무처럼 우리도 하늘나라의 꽃을 우리 속에서부터 활짝 피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무화과 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닫기를 바라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는 세상 밖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늘나라를 살아가야하것이 제자들의 사명이라는 말씀과도 같을 것입니다. 깨어 있어라는 의미는 들떠있는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곧 대림시기가 다가옵니다. 깨어 기다리는 분위기를 먼저 내 안에서부터 만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변 환경 탓을 할 것이 아니라 무화과 나무처럼 내 안에서부터 은총과 신비가 쏟아질 수 있도록 깨어 기다리며 그러고도 여분의 기름이 남아있다면 주위의 어두움 속에도 빛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좋겠습니다.

-----------------------------------------------

나해 연중제33주일 마르13,24-32 (20241117 반송성당)

오늘은 연중 제33주일이자 가난한 이의 날이기도 합니다. 다음 주에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내면 연중시기가 끝이 나고 12월 첫날부터는 대림주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오늘 재림하시게 되면 가장 먼저 가보고 싶어하실 곳은 어디일까요??? 대림/재림의 의미가 있습니까???

* 재림- 파루시아:도착, 도달, 존재, 출석/ “동쪽에서 친 번개가 서쪽까지 비추듯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마태24,27)

* 오다- 에르코마이: 오다, 가다/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마태24,30; 마르13,26)

* 기다리다- 프로스테코마이; 기다리다, 희망하다, 기대하다/ ”“시메온이라는 사람은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루카2,25)

오늘 복음과 독서에서는 마지막 날에 재림때에 오시게 되는 인물 셋을 소개합니다. 세 인물은 먼저 오늘 제1독서에서 소개되는 미카엘 대천사입니다. 2독서에서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복음에서 소개되는 인물은 사람의 아들입니다.

먼저 미카엘 대천사가 어떤 인물인지에 관해서는 성경의 인물들책에 소개된 부분을 (나해 연중 제33주일) 참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의인들을 보호하는 천사인데 특히 죽은 모세의 시신을 수호하며 지켰던 천사(유다1,9)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어 두 인물이 남았는데 누구누구입니까??? 그리스도와 사람의 아들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와 사람의 아들은 같은 인물이 아닙니까??? 하고 묻는다면 같은 인물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당신을 가리켜서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제2독서 히브리서에서 소개하는 그리스도와 오늘 복음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구름을 타고 오시는 사람의 아들을 좀 더 깊이 묵상해 본다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기다리는 분이 누구인지, 그리스도인지 아니면 사람의 아들인지를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그리스도와 사람의 아들은 본질적으로는 같은 분이지만 존재하는 방식으로는 서로 다른 인물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제2독서 히브리서에서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단 한번 당신 자신을 바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한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즉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어 우리가 죄없는 사람으로 변화시켜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사람의 아들은 누구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마지막날에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람의 아들이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오시는 분 사람의 아들그리고 그 사람의 아들의 날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사람의 아들과 그 날에 관해서는 네 복음서에서 말하는 관련된 기사를 모두 참조해 볼 수 있겠는데, 특히 마태오복음 24장에서는 조금 더 상세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마태오에서는 사람의 아들의 날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의 재림이라 하고, 마르코에서는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이라며 그날에 관하여 가르쳐주십니다. 마태오와 마르코에서 사람의 아들의 재림에 관하여 말씀하신 이유는 먼저 예수님께서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시자 제자들이 그렇다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게 되느냐고 물었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성전파괴에 관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우리는 요한복음을 통해서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아들의 날/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또는 사람의 아들의 재림은 먼저 당신의 몸이 허물어지는 때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겠습니다. 허물어지는 날부터 다시 일어나는 날까지입니다. 허물어지는 고통에서 다시 일어나는 기쁨까지 사흘이면 충분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루카 17,25에서도 당신의 마지막 날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려주시는데,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하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즉 그 날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태초의 한 사람으로 창조되었던 아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창세기 이야기는 본디 한 사람에서 두 사람이 되었고 두 사람은 곧 한 사람에서 시작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바깥으로 나갔던 사람이 안으로 모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바깥세상이 아니라 안을 들여다 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본문에서 아담과 하와가 첫음으로 사람의 아들/자녀를 낳았는데 본문에서는 빛을 낳았다고 표현했습니다. 빛은 곧 사람을 알아보는 눈동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신체중에서 유일하게 빛이 나는 곳이 눈동자이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이 눈동자를 떳을 때와 마찬가지로 두 눈을 감게 될 때가 바로 사람의 아들의 날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눈동자 안을 어떻게 들여다 봅니까??? 눈동자 안을 들여다 보려면 눈을 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 복음에서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더 나아가 이 말씀을 사도바오로는 1코린토 15장에서 순식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순식간에, 눈 깜박할 사이에, 마지막 나팔 소리에 그리될 것입니다. 나팔이 울리면 죽은 이들이 썩지 않을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이러한 순간을 무화과 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고 하십니다. 무화과나무는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은 다음 여름이 오면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꽃을 비우지 않고 드러나지 않게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내면의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의 아들이라는 호칭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내적 성화의 은총의 또다른 표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메시아)라는 호칭을 두고 굳이 당신을 일컬어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신 이유도 바로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도 그 자기 성화의 은총에 참여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아들이라는 호칭은 태초에 부여받은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은총의 이름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아주 작은 것, 우리가 숨쉬는 것에서부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내면의 은총이 가득한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