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나해 연중제28주간 목요일 예수의성녀데례사 루카11,47-54 시린 법(성바)

jasunthoma 2015. 10. 15. 07:40

오늘 우리는 전례력 안에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자서전을 보면 기도의 네 단계를 설명해주고 있는데

기도를 하느님의 정원을 가꾸는 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정원에서 잡초도 뽑고 물도 주는 일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성녀는 여기서 기도의 네단계는 우리의 눈물과 비례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기도에 처음 임하는 초심자들의 기도는 순전히 개인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눈물을 길어 올리게되지만

단계가 거듭될수록 자신만의 눈물이 아닌 타인의 눈물과 함께하게되고 결국은 인간의 눈물을 넘어서 하느님의 눈물에까지 도달하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녀는 정원에 물을 주는 방법은 네 가지 방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나르게 되면, 이때 우리는 수고를 많이 해야합니다. 그런데 도르래와 두레박으로 물을 긷게 되면, 이때는 윈치를 사용하게됩니다. 나는 가끔 이 방식으로 물을 길었는데, 다른 방법보다 힘이 덜 들고 물을 더 많이 길을 수 있었습니다. 또는 강이나 개울에서 물을 끌어 댈 수도 있는데, 이 방법으로 하면 땅에 물을 훨씬 더 잘 줄 수 있습니다. 땅이 흠뻑 젖기 때문에 물을 자주 줄 필요가 없으니 정원사의 수고가 훨씬 덜어집니다. 한편, 비가 많이 와서 물을 주게되면, 그때는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주님께서 정원에 물을 주신 것이 됩니다. 이는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다른 방법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 좋은 방법입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례사 자서전, 고성밀양가르멜여자수도원, 2015, 분도출판사, 111쪽>>

 

결국 우리의 기도가 사도직을 위한 기도라면 우리는 마지막 네 번째의 물을 통해서 관상의 단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더욱 효율적인 사도직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도직의 원천은 기도에 있고 결국은 하느님이 활동하실 때 우리의 기도는 완성되듯이 우리의 사도직 또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내 의지로 물을 주는 데서 시작하지만 결국 하느님이 물을 줄 때야말로 우리의 삶은 진정 행복한 삶이 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나 자신의 노력과 하느님과의 일치 가운데 형제들의 눈물이 함께해야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형제들과 공감할 수 없다면 하느님과의 일치에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들을 불행하다며 꾸짖습니다.

그들이 지식의 열쇠를 치워버리고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못들어가게 막아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식의 열쇠가 무었일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다름아닌 율법(계명,십계명)이 바로 모든 지식의 열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지식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계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두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는 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우리가 흔히 이가 시리다, 눈이 시리다. 손이 시리다 라고 하잖아요???

시림 또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오늘날 성소와 제단은 삶과 죽음이며, 요람에서 무덤까지일것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법이 시리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법이 시리지 안도록 형제들과 일치하고 또한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는 시간에 머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