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나해 연중제28주간 수요일 루카11,42-46 도구화된 하느님(성바)

jasunthoma 2015. 10. 15. 05:42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교사들을 꾸짖는 장면 중 일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바리사이들은 경건주의자들 (하시딤)의 후예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가르치기만 하는 율법교사들과는 달리 율법의 해석과 실천을 강조하던 학파에 속하던 사람들입니다.

불교의 예를 들자면 교종(화엄종)과 선종(조계종)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언어와 문자를 중심으로 수행하는 교종과는 달리 언어와 문자에 얽매이기보다 실질적인 참선수행을 더 강조하던 선종과 바리사이들은 비슷한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렇듯 한가지에만 얽매이지 않는 바리사이들이 율법학자들보다 더 존중받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바리사이들을 꾸짖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 하느님의 것은 바치지 않으면서도 정작 그들이 즐겨먹는 채소에 관해서는 꼬박꼬박 십일조를 내었던 것입니다.

해석은 잘하면서 실천할때에는 하느님의 것보다 인간의 것을 더 중히 여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봉헌할 때에 생색나는 예물을 즐겨 바친다는 것입니다.

금육과 금식을 떠올리게하는 예물을 즐겨 바치는 모습입니다.

적은 노력으로 큰 이득을 챙기려는 누룩과 같은 이들의 모습입니다.

 

사회적 불의는 적은 노력으로 많은 이득을 취하려는 경제적 탐욕에서 시작됩니다.

이에 관해서는 교회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봉헌예물이 들어옵니다.

미사를 드려달라는 것입니다.

미사만 평생토록 드려도 예물이 넘치도록 후하게 들어옵니다.

미사를 봉헌하는데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잔과 접시의 겉을 항상 깨끗 닦아서 항상 깨끗이 비워놓습니다.

그래야 없는줄 알고 또 주고 또 주고 계속해서 채워 주기 때문입니다.

 

쌀을 씻을 때에 보통 몇번 씻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밥할때에 손을 씻지 않고 쌀을 씻으면 어떻게 되는가???

~~~

즉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인간의 것만을 강조하는 모습을 꾸짖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을 예수님께서는 "드러나지 않는 무덤"으로 비유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드러나지 않는 무덤은 인간을 신격화하는 이방인들(헬레니즘적인)의 관습을 따르는 이들의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계명이 아니라 죽은 계명을 실천하면서도 죽은 계명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리사이들은 실천을 강조하다보니까 실천하는 당사자인 인간 자신이 그 실천의 중심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보편적인 정의와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기보다 수신재가하여 입신양명하는 것에 더 목말라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은 인간이 세상을 지배해가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객이 전도된 셈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주님의 도구로 쓰일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정성을 다하여 봉헌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