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제20주간 금요일 마태22,34-40 하느님과 인간(스승//대구협력)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습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시며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는 어찌하여 예수님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를 물었던 것일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오늘 복음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바리사이들이 모였던 이유는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말문을 막아버렸던 예수님의 말씀이 바리사이들은 인정하기 어려운 내용이거나 듣기가 거북한 내용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그 내용은 오늘 복음 바로 이전에 나오는 부활에 관한 사두가이들과의 논쟁입니다.
사두가이들은 예수님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며 시비를 걸었던 것입니다.
만약 부활이 있다면 부활때에 그들의 일곱 형제 가운데 그 맏이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것이 그들의 시비거리였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사두가이들이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따지고 보면 하느님 사랑보다 자기사랑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은 사두가이들의 그런 이기적인 면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여기서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현세주의, 속세주의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생각해보면 자기를 사랑하는 일보다 더 쉬운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사랑이란 자기 자신만을 사랑한다는 의미는 아닐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에 해당하는 범위는 자기가족, 자기형제, 자기고향, 자기가문에게 까지 넓어지고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예로 오늘 제1독서 룻기에 나오는 시어머니 나오미와 두 며느리 이야기입니다. 룻과 다른 며느리 오르파의 이야기입니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제 겨레와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 그러자 룻이 말하였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례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이렇듯이 자기를 사랑한 오르파와 자기를 버리고 시어머니를 따른 룻을 통해서 하느님 사랑을 실천한 인물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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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한분이신 하느님을 일편단심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온 율법과 예언서의 계명이 하나의 계명이 아니라 두 계명에 달려있다고 말씀하신 의미를 잘 살펴볼 수 있는 하루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