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제15주일 마르6,7-13 보호본능 주인의식(스승)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둘씩 짝지어 파견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각각 따로따로 개별적으로 파견하시면 좀 더 많은 곳으로 파견하실수 있었을텐데 왜 하필이면 둘씩 파견하셨을까요?
그것이 아니라면 세명이나 네명씩 파견하실 수도 있을 텐데 예수님은 둘씩만 파견하십니다.
그래서 저도 둘씩 짝지어 파견하신 이유를 두가지만 생각해봅니다.
먼저는 둘은 공동체성을 띠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만약에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을 파견했다면 각자 개별적으로 한명씩 파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세속을 피해 광야에 머물면서 세례자 요한이 그랬듯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하나면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집으로 파견됩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먼저 여러마을과 고을을 두루다니시며 복음을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까지는 세상 밖에서 세상 안으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울렸다면
이제는 세상 안에서 세상 밖으로 하느님의 말씀이 울려 퍼져 복음이 선포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세상 밖이 아니라 세상 안으로 파견되기에, 그리고 광야가 아니라 마을과 그 고장의 집으로 파견되기에, 또한 은수생활이 아니라 공동체 생활에로 파견되었기에, 홀홀단신이 아니라 둘씩 짝지어 파견하였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둘씩 짝지어 파견하신 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둘씩 파견하실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몰론 복음을 선포하는데는 한명이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선포하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들을 귀가 있는 이들은 회개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오늘 복음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마귀는 쫓아 내고 병자에게는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주는 일이 뒤따른다는 것입니다.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서 마귀들린 사람에게 무턱대고 나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구마에 관해서 체험이 없기 때문에 그저 복음에 비추어 상식적인 범위에서밖에 말씀드릴 수밖에 없지만
이에 관하여 체험이 있는 수사님이 오시면 더욱 상세히 설명하시겠지만
마귀에게 무턱대고 나가라고 하면 마귀가 아 예~~ 하면서 순순히 물러날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까지는 체험하지 않은 저로서도 알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도 생각이 있고 머리를 굴릴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는 마귀들린 사람의 잘못을 깨우쳐 줄 필요가 생기게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마태오(18,16)복음의 한 구절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즉 복음말씀을 선포하여 그를 회개하도록 권유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하여 신명기(19,15)에는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지르는 모든 잘못과 관련하여, 그의 어떤 죄나 잘못이든지, 증인 한 사람만으로는 그 증언이 성립되지 못하고, 증인 둘이나 셋의 증언이 있어야 유죄가 성립된다"
다시말하면 더러운 영에 대한 권한을 받았다고해서 혼자가서 마귀를 단죄하거나 내쫓을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또한 병자에게 병을 고쳐줄 때에도 홀로 물을 붓고 세례를 주거나 혼자가서 기름을 바르지 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끝으로 한가지 더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를 파견하시면서 몇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길을 떠날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벌은 껴입지 말라"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인의식이 있는지에 관해서 묻고 계십니다.
만약에 우리가 파견된 봉헌생활을 하면서 주인의식이 있다면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가지 않든지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어떤 일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도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챙기고 확보하고 껴입고 길을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곳이 다 내 집이라고 생각하고 내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집에 가면서 누가 이것저것 챙겨들고 길을 떠납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우리에게 주인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가 보호본능을 발휘하는지 공격본능을 발휘하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인의식이 있는 사람은 보호본능을 더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하루 예수님 안에서 우리도 내 곁에있는 형제가 한 가족으로서 그리고 내가 있는 곳이 곧 내집으로서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