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제9주간 화요일 마르12,13-17 사랑의 배려(대전협력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깨서는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십니다.
이에 그들은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인간의 것이라고 대답하고야 맙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물으셨던 이 물음은 그 동전에 그려진 인물의 초상이나 글자가 아니라 그 해당된 인물의 모상을 물으신 것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것은 창세기의 핵심 내용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하늘을 가르키는데 그들은 하늘을 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손가락만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것을 몰라본 그들의 잘못을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하고 그들을 두둔해 주십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일은 잊어버리고 황제의 것만을 볼 수밖에 없었으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인간적인 실수를 드러내지 않으시고 오히려 하느님의 자리로 초대해 주십니다.
하느님의 인간 사랑은 인간에게 베푸시는 배려가 얼마나 큰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을 배려하는 모습은 다른 복음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예수님을 붙들었다)
부활하신 뒤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셨던 갈릴레아 호숫가에서
(그들이 그물을 끌어올려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잡은 물고기를 몇마리 가져 오너라")
어제 복음인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에서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 주인은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돌아온 탕자/ 잃었던 아들 비유에서
닐 기유메트의 "땅끝까지"라는 책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재력가인 아버지와
그 아버지 밑에서 온갖 혜택은 다 누리면서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골칫거리 외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이이야기가 오늘날 누구에 관한 이야기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우리를 배려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로우심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오롯이 도로 바치'는 봉헌의 삶'을 통해서 실천하고자 합니다.
오늘 재속의 삶을 살기로 선서하신 6분의 회원들 또한 그 삶을 살기로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 삶의 시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하느님의 것 또한 보이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분은 미약하고, 단순하고, 천박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작은 일들을 통해서 큰 일들을 이루시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보이지 않는 분의 힘은 그런 나약한 갓난 아기와도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삶이 인간의 것으로 하느님의 것을 완성할 수 있도록 우리의 배려심을 잘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