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부활제4주간 월요일 요한10,1-10 문없는 성전(성바)
오늘 북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목자와 양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즉 목자의 상징은 지팡이가 아니라 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에서 목자의 상징은 단연 양들을 통치하는데에 필요한 지팡이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이후로는 지팡이는 사라졌습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지팡이라는 말을 각각 한번씩 사용하면서 지팡이를 지녀라 혹은 지니지 마라 하고 말하는데
길을 나설때에는 지팡이 외에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는 마르코 복음에서 조차도 사실은 지팡이는 집밖을 나섰을 때에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팡이는 집안으로 들고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집안에서는 지팡이를 사용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 복음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지팡이라는 말을 아예 쓰지않습니다.
목자의 상징은 지팡이가 아니라 문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이나 요즘이나 성당(성전)문은 닫혀 있더라도 걸어 잠가놓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성당문을 잠가놓지 않는 것만으로는 목자가 할 일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당문을 잠가놓는다는 말은 문에다가 문짝을 달아놓는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와 반대로 성당문이 열려있다는 말은 문에 문짝을 달아놓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성당문은 항상 열려 있어야한다고 할 때에 문에다가 문짝을 달아 놓고 열어놓아야 할까요 아니면 처음부터 아예 문에다가 문짝을 달지 말아야 할까요???
제 생각에는 문이 항상 열려있으려면 문짝을 달아놓지 않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항상 목자가 있고 목자는 그 집안의 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목자는 있는데 문이 없는 집이 있을까요?
집을 지어놓고 문을 만들지않는 집이 있을까요?
아예 문이 집이고 집이 문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집이 있을까요?
만약에 그런 집이 있다면 어떤 곳일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둔토리성지
(하우현->둔토리->손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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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토리성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사봉 등성이에 위치한 천주교 성지다. 하우현성당에서 국사봉 넘어 5km 지점에 있다.
이곳은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새남터에서 순교한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가 생전에 박해를 피해 피신한 동굴이다. 볼리외 신부는 조선에 입국한 선교사들 중 가장 어린 나이인 26세에 사형을 당했다. 조선에 도착한 지 9개월만이었다. 1840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는 1864년 사제품을 받고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프랑스에서 조선까지는 10개월의 여정이 걸렸다. 한양에서 몇 십 리 떨어진 조그만 교우촌에 머물며 조선말을 배운 그는, 병인박해가 시작된 1866년 무렵 경기도 광주로 발령을 받았다. 그러나 임지로 떠날 채비를 하던 중 동료들이 체포되었고, 국사봉 등성이의 비좁은 동굴에서 은신하던 그는 누군가가 알려주는 바람에 결국 관군들에게 잡혀 새남터로 끌려가 효수 당했다. 당시 베르뇌 주교, 브르트니에르, 도리 신부 등 볼리외 신부의 동료들도 함께 효수되었다. 꽃 같은 나이에 순교한 볼리외 신부는 그 후 1968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되고,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추대되었다. <자료/경기도>
[출처] 하우현성당, 둔토리성지, 손골성지|작성자 채정은
오늘하루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마음도 항상 열려있는 성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