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나해 부활제3주간 수요일 요한6,35-40 마지막 파스카(스승)

jasunthoma 2015. 4. 28. 04:1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당신을 보내신 분의 뜻은 두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고

둘째는 당신을 보고 믿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이를 공관복음의 분위기로 바꿔 말하면

부자청년과 낙타바늘귀 이야기로 대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다가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네가 가진 것을 다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리고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달리 말하자면 '네 재산을 지고 나를 따르지 말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은 다시 살아날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내 재산이라는 것이 사실은 따지고보면 내것이 아니라 남의 것입니다. 그러니 남의 것을 가지고 남의 능력을 지니고 내 능력인 것처럼 살지 마라는 말씀입니다. 내 십자가라는 의미는 나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능력이 아닐까 합니다. 내 손과 발이 십자가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우리가 살아나는 우리의  마지막날은 과연 언제일까? 하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물음은 내가 언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는가 라는 물음과도 상통합니다.

그것은 바꿔말하면 내가 언제 묶인 몸에서 풀려났는가? 입니다.

내가 언제 남의 능력을 내려놓았는가? 입니다. 

내가 언제 세상으로부터 탈출했는가?

내가 언제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왔는가? 

이러한 물음은 결국 나는 언제 부활했는가? 나는 언제 다시 살아났는가? 나는 언제 다시 태어났는가? 라는 물음이 됩니다.

 

저에게 있어서 마지막 순간/ 마지막 날의 장면이 있다면 그것은 그다지 기뻐할수만은 없는 장면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집에서(어머니의 품) 탈출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장면과 흡사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가정으로부터의 파스카보다 모정으로부터의 파스카가 오히려 더 힘든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배신을 묵인해 주신 어머니의 사랑은 십자가 아래서 죽음을 받아들이신 사랑이었습니다.

 

예수2에서 클라우스베르그는 사도들의 수장인 베드로에 관하여 주석하면서 긴 장문의 편지를 썼습니다.

(여기서 클라우스베르그는 교회의 절충주의에 심도있는 비판을가하고있다)

그 편지를 읽다보면 거기서 베드로를 3번이나 부인하게 하면서 베드로의 눈에서 눈물을 확인했던 분이 예수님 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눈물의 의미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베드로를 추궁했던 예루살렘의 여인들을 상기시켜 줍니다.

만약 베드로가 세번 부인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눈물을 보인 그를 보호해 주지 않았다면 과연 예루살렘에서 베드로가 쫓겨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때는 겨울이었고 때는 밤이었는데 성전에서 쫓겨나지 않고 버티고 그 여인들 사이에서 불을 쬐며 서 있을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만약에 그 후로 베드로가 마지막 날에 순교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배반자 유다보다 더 혹독한 평가를 받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 일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생활에 비추어 볼 때에 여러면에서 베드로의 공생활이 결코 예수님을 본받은 모범적인 생활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탈출하고 벗어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날에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면 나의 모든 행위는 베드로처럼 여인들의 모성을 자극하는 절충주의적인 눈물에 머물고 말것입니다.

물론 내가 건너가는 파스카가 비록 보잘것 없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될지라도 그것 조차도 마지막 파스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마지막 순간순간에 주님의 파스카를 성취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