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재의예식다음 토요일 루카5,27-32 레위의 꿈(스승/딸16021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앉아있는 레위를 보시고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하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좀 생각해 볼 것은 레위라는 이름의 인물입니다.
레위라는 인물은 루카복음에서 만큼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불리움을 받은 제자로 등장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나를 따라라" 하는 불리움을 받은 제자는 루카복음에서 만큼은 레위뿐입니다.
물론 그에 앞서 고기잡이 어부들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시기는 하였지만
루카복음을 잘 읽어보면 먼저 레위에 앞서 제자가 된 어부들은 예수님이 어디에도 너희는 나를 따라라 하고 부르신 적이 없습니다.
어부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따르게 된 경위를 루카복음에는 다음과 같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호숫가에 대어놓은 배 두척을 보셨습니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가운데에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습니다.
깊은데로 저어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하였습니다.
시몬은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며 거부의 의사를 밝혔지만 곧 마음을 바꾸어 호수 깊은데로 저어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물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들어 그들은 다른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도와달라고 하였습니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시몬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주님 저에게서 떠나가 주십시오 저는 죄많은 사람입니다 하고 고백하였고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이르셨습니다.
두려워하지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루카복음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어부들을 부르실 때에 "나를 따라라" 하고 부르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깊은데로 저어가라/ 그리고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또는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직접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따른 제자는 레위가 유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첫 제자들인 어부들은 자청해서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이라면 레위만큼은 예수님께서 먼저 청하셔서 따른 특별한 제자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레위에게만 특별히 나를 따라라 하고 청하셨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레위인은 이스라엘 열두지파에 중에서 유일하게 땅을 분배받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의 성막의 일을 맡아서 봉사직을 수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성전에 머물면서 공동체를 보살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레위라는 세리는 세관에 앉아 있었습니다.
즉 여기서 앉아있다는 것은 앉아 있을 곳이 있다는 말입니다.
앉아있을 곳이 있다는 말은 그는 자리를 잡았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터를 잡았다는 의미입니다.
땅을 장만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레위라는 인물이 꼭 레위지파에 속한 인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사제이신 예수님의 관점에서 레위를 부르셨을 때에 레위는 상징적으로 레위지파에 속한 인물로 볼 수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레위라는 상징적인 인물이 세관에 앉아있는 것은 "세속화"된 이스라엘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성전에 머물면서도 앉아있기보다 성전 문앞을 지키는 파수꾼의 직분이 그들의 봉사직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레위는 어쩌면 땅을 분배받지 못한 레위인으로서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그러하였듯이
그들이 평소에 머물곳은 성전이었던 것을 알고 있었고 또 늘 마음에 품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시편 84편을 보면 레위의 자손인 코라의 노래로 명시되어있는데 주님의 성전에 대한 그리움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정녕 당신 앞뜰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날보다 더 좋습니다. 저의 하느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안에 살기보다 더 좋습니다 (새성경)
주님의 집 뜰안이면 찬날보다 더 나은 하루, 악인의 편한 집에 살기보다는 차라리 하느님 집 문간을 택하리라 (공동번역)
실로 당신의 궐내라면 천날보다 더 나은 하루, 악인들의 장막안에 살기보다는 차라리 하느님 집 문간에 있기 소원이니이다(시편83편 제3주간 월요일 아침 성무일도)
제 사제서품성구 또한 같은시편입니다.(주님께 힘을 얻어 순례길에 오른 사람 복되어라. 시편84,5)
그런데 레위의 자손들이 이노래를 부르며 주님의 성전에 대한 그리움을 고백하게 된 경위가 있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를 떠돌 때에 레위의 자손(증손)인 코라가 아론을 시기하여 맞서 반기를 들고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민수16장)
그때에 모세는 레위의 자손들을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레위의 자손들아, 제발 들어보아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너희를 이스라엘 공동체 가운데에서 가려내셔서 당신께 가까이 오게 하시어 주님 성막의 일을 맡기시고 공동체 앞에 서서 그들을 보살피게 하셨는데, 그것으로는 모자란다는 말이냐? 그분께서는 너를 그리고 너의 형제 레위인들을 모두 너와 함께 당신께 가까이 올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런데 이제 사제직마저 요구하는 구나. 너와 너의 무리는 바로 주님을 거슬러 모여든 것이다. 아론이 누구인데 너희가 그에게 투덜댄다는 말이냐?"(민수16,8-9)
이 말에 레위의 자손들은 모세에게 이렇게 맞섰습니다.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데리고 올라와, 이 광야에서 죽이는 것만으로는 모자라서, 이제 우리 위에서 아주 군주 노릇까지 하려드시오? 더군다나 당신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지 못하였소. 그리고 밭과 포도원을 우리 소유로 주지도 못하였소. 당신은 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할 셈이요?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소."(민수16,13-14)
이렇게 맞섰던 코라와 그를 따른 사람들은 하느님의 진노를 받아 모두 땅이 삼켜버렸고 그들은 공동체 가운데서 사라졌던 불행을 겪어야 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레위에게 "나를 따라라"하고 말씀하셨을 때에 레위는 자신이 더이상 세관에 앉아 세리일을 할 수 없다는 예수님의 암묵적인 메시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레위인이라면 세속에 따라 살기 보다는 하느님이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는 (레위기의 핵심) 말씀에 따라 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죄인이었던 레위가 오늘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을 통해서
이렇게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어느정도는 다 굴곡이 있음을 보게됩니다.
궁핍하다가 풍요롭기도 하고 풍요롭다가 궁핍해지기도 합니다.
나쁜 일을 하다가 회개하기도 하고 좋은 일을 하다가 죄를 짓기도 합니다.
레위는 오늘 하느님께 봉사하기 보다는 황제에게 봉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늘 황제의 탁자에서 일어나 천상 양식이 차려진 주님의 식탁으로 초대받았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천상 양식이 차려진 생명의 식탁에서 하느님께 봉사하는 기쁨으로 채워질 수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