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나해 연중제4주간 목요일 성녀아가타동정순교자기념 마르6,7-13 형제의 소중함(성바)

jasunthoma 2015. 2. 5. 05:25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둘씩 짝지어 파견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각각 따로따로 개별적으로 파견하시면 좀 더 많은 곳으로 파견하실수 있었을텐데 왜 하필이면 둘씩 파견하셨을까요?

그것이 아니라면 세명이나 네명씩 파견하실 수도 있을 텐데 예수님은 둘씩만 파견하십니다.

잠시만 생각해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파견하신 이유는 아주 분명해집니다.

 

먼저는 둘은 공동체성을 띠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을 파견했다면 각자 개별적으로 한명씩 파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세속을 피해 세례자 요한이 그랬듯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면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광야라는 곳은 이미 세상과 동떨어진 죽음을 상징하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은 집으로 파견됩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여러마을과 고을을 두루다니시며 복음을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 밖으로 나갔다가 이제는 세상 안으로 들어옵니다.

세례자 요한까지는 세상 밖에서 세상 안으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울렸다면

이제는 세상 안에서 세상 밖으로 하느님의 말씀이 울려 퍼져 복음이 선포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 밖이 아니라 세상 안으로 파견되기에 그리고 광야가 아니라 마을과 그 고장의 집으로 파견되기에 홀홀단신이 아니라 둘씩 짝지어 파견하였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신 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둘씩 파견하실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몰론 복음을 선포하는데는 한명이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선포하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들을 귀가 있는 이들은 회개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마귀는 쫓아 내고 병자에게는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주는 일이 뒤따른다는 것입니다.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서 마귀들린 사람에게 무턱대고 나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마귀에게 무턱대고 나가라고 하면 마귀가 아 예~~ 하면서 순순히 나가겠습니까?

예수님이라면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파견되는 사람이지 파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먼저는 마귀들린 사람의 잘못을 깨우쳐 주어야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마태오(18,16)복음의 한 구절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즉 복음말씀을 선포하여 그를 회개하도록 권유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하여 신명기(19,15)에는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지르는 모든 잘못과 관련하여, 그의 어떤 죄나 잘못이든지, 증인 한 사람만으로는 그 증언이 성립되지 못하고, 증인 둘이나 셋의 증언이 있어야 유죄가 성립된다"

 

다시말하면 더러운 영에 대한 권한을 받았다고해서 혼자가서 마귀를 단죄하거나 내쫓을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또한 병자에게 병을 고쳐줄 때에도 홀로 물을 붓고 세례를 주거나 혼자가서 기름을 바르지 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대상이 죽음에 임박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그럴 수 없다는 말입니다.

 

2월2일 주님봉헌축일에 수사님 한분이 갱신서원을 발하는 사진이 올랐는데 그 옆에 증인으로 두 분의 수사님이 함께 서계셨습니다.

마태오 수사님 옆에 콜베 수사님이 서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봉헌생활은 지상에서 시작되지만 천상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절실히 체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의 지상생활은 모세도 "두렵다"고하며 몸을 떨었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모세 곁에는 항상 아론이 있었습니다.

오늘하루 우리도 우리 곁에있는 형제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