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주님공현후 토요일 요한3,22-30 하늘로부터 오는 정결(성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게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십니다.
그런데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에논에 물이 않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있었다고 오늘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은 요르단강 전체를 놓고 본다면 중간 정도쯤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례를 베풀던 곳은 유다땅이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요르단강 끝자락 쯤에 해당하는 사해 근처에 위치해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즉 서로 다른 장소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들은 서로 말다춤을 하였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요한이 주던 세례와 예수님이 베풀던 세례가 어떠하였길래 요한의 제자들과 유다인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아시다시피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에 관하여 증언한 말이 요한복음 1장 19절부터 34절까지 나오는데 이를 보면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 . .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 .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주셨다. '셩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하고 요한이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요한이 베풀던 세례와 예수님이 베풀던 세례가 서로 달랐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즉 요한은 물로세례를 베풀고 있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나자렛에 머물던 예수님이 유다땅으로 가시어
공적인 첫활동으로 세례를 베푸시자 그 장면을 목격하던 다른 제자들이 술렁거렸을 것입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그들은 물로 베푸는 요한의 세례를 받고 정결하게 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사람들이 또 다시 예수님께 몰려가 세례를 받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다툼을 벌인것은 어떤 세례가 정결례에 합당한가? 에 관한 다툼이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임프수사님 병문안가서 환자의 손을 잡았더니 손을 씻지 않고 환자의 손을 잡으면 어떻하냐고 아주 불쾌해 하셔서 미안해졌습니다.
환자베드앞에 걸려있는 손세정액이 보이지 않냐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좀 전에 화장실 가서 손을 씻고 와서 수사님 손을 잡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환자에게 있어서는 청결과 관련하여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입원해 있는 환자의 관계를 떠나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씻지 않아도 정결할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마리오 수사님이 손씻는걸 본 적이 없습니다.
뭐 뭍었으면 그냥 툭툭 털고 맙니다.
그런데 그런 손으로 포도주를 담글때에 포도주확에 그냥 그 손을 거침없이 담그고 휘젓습니다.
마리오 수사님의 말에 의하면 터진 포도 과즙이 술로변할 때 살균이 된다고 합니다.
사람이 정결해지는데에 필요한 것은 인간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이에 요한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하늘로부터 받은 것을 기쁘게 베풀 수 있는 시간으로 봉헌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