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나해 주님공현후 목요일 루카4,14-22ㄱ 받아들임과 선포함(성바)

jasunthoma 2015. 1. 8. 04:59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지 얼마 지나지 않았숩니다.

그런데 전례안에서 복음을 묵상하다보니 예수님께서 벌써 다 자라서 당신의 고향에서 희년을 선포하고 계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후면 텅빈 구유를 바라보며 세월 참 빠르고도 야속하게 지나가네 하며 또다시 우리곁을 훌쩍 떠나버린 아기 예수님을 생각하며 누군가 머물다 떠나간 빈 자리를 바라보며 마음은 공허해 질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올해도 분명히 우리곁을 찾아오신 아기 예수님을 찾아 찾아뵙고 구유경배를 하기는 하였는데 아직 내 마음에 모시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혹시나 눈으로만 찾아 뵙지 않았을까? 눈도장 찍는데만 급급하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런것만 같아 못내 아쉽기만 한 것입니다. 

창립자께서는 항상 구유에서 시작하라 하셨는데 내 마음의 구유는 처음부터 허공이었다고 생각하니 송구스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공동체에 모셔진 구유를 바라보며 내 마음에 평화가 머물수 있으니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두루마리를 펼치시어 (이사61,1-2; 레위25,8-13) 희년/해방을 선포하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보게하고,

억업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오늘 이 성경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하셨을 때에

사람들이 이 선포를 얼마나 숨죽이며 기다려왔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정작 해방이 선포되고 나니까 두가지 반응이 생깁니다.

받아들이는 사람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즉 생명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먼저는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두번째 반응은 그 말씀이, 그 선포가 맞는 말씀이고 합당한 선포이기는 한데 아직 때가 아니다 하며 더 기다리며 지켜보자는 것입니다.

결국 너는 생명이 아니다, 너는 생명이 아니니 네가 선포한 해방의 말씀도 좀 더 지켜보아야 겠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받아들이는 방법 중에서 두가지를 생각해봅니다.

먼저는 배부르게 먹어서 생명을 맏아들이고 느끼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우리의 소원, 염원, 숙원, 바라는 바, 꼭 이루어야 할 것들, 약속, 소망이 이루어지고 해결될 때에 우리는 배고품을 잊어버리게 되고 먹지 않았지만 초월적 배부름으로 생명을 받아들이고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평소에 믿고 바라고 사랑한대로 받게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내가 원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도록 자유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마음을 열고 숨을 들이쉬기만 하면 생명은 들어 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주님의 외침이 비록 나자렛고을의 작은 메아리에 불과하지만 장차 감추어진 보물의 진가는 저언덕 위에서 선포되기를 기다립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느끼고 받아들여서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