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신년미사 천주의성모마리아대축일 루카2,16-21 복된 결심(성바)
수도원 들어와서는 1월1일날 새해맞이하러 일출을 보러 어디를 나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만은
입회하기 전에는 해마다 12월 31일이 되면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산으로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제대한 해인 94년을 보내고 95년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천왕봉에 올라갔던 기억이 제 머리에 가장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 하지만 그날 일출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까지 기다려서 1월 2일에 일출을 보았습니다.
제가 일출을 보기위해 산에 올라갔던 이유는 어떤 결심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그때는 좋은 직장에 꼭 들어간다는 결심
오늘복음에서 "마리아는 이 모든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였다"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마음속 깊이 새기고 되새긴다는 것은 결심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이와 같은 장면이 루카복음서 1장과 2장에서 모두 세차례에 걸쳐 보여주고 있습니다.
잉태되기전 천사 가브리엘이 찾아왔을 때, 그리고 오늘 목동들이 찾아왔을 때,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소년시절에 예루살렘에서 율법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는 장면을 보았을때에 그의 어머니는 이모든 일을 곰곰이 생각하고, 되새기고, 마음속에 간직하였습니다.
오늘 새해가 밝았습니다.
혹시 작년 2014년 한해는 행복한 한해였습니까?
무엇이 행복한 것인지를 좀 생각해보면 좋을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결심하고 깨어있는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는것 같습니다.
무엇을 결심한다는 것은 우리를 깨어있게 하는것 같습니다.
창립자께서는 하셨던대로 우리도 한해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하여 성체앞에서 깨어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어제 송년미사를 드리고 이어서 우리 모두는 성체앞에서 밝아오는 2015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때 어떤 일출보다 더 밝은 빛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수사님들은 밝아오는 한해를 맞이하면서 성체앞에서 무슨 결심을 하셨습니까?
저는 임프수사님 생각하느라고 결심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2014년 작년에 개인적으로 한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성지순례 마라톤에 참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3월달 날자가 한달 남짓 남았을때에 결심했는데 참가할수가 없었습니다.
참가자격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년 한해는 준비하는 해로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몸무게를 좀 빼야해서 식사표시판에 저녁은 계속 안먹는걸로 표시를 해두었습니다.
그런데 수녀님께서 계속 원내로 옮겨놓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보이는데 식사표시는 계속 안먹는 걸로 빠져있으니 옮겨다 놓으시면서도 조금 신경질이 나셨을 법도 합니다.
그렇게 계속 무언의 줄다리기를 하다가 수녀님께서 왜그러냐고 물어보셨을 때에 선뜻 말씀드리기가 수월하지 않았지만
저의 결심을 이야기 했습니다.
제 페이스북에 들어가면 나의 한해를 요약해서한눈에 볼 수 있도록 스크랩되어있는데
그 첫 화면에 광화문 앞 십자가 사진이 올라있습니다.
제가 올린 글이나 사진 중에서 좋아요가 가장 많이 클릭되었거나 댓글이 가장 많이 달린 사진이 첫 장면에 실리는 모양인가 봅니다.
광화문에서 대한문까지 "사람이 앉으니 마루가 되고 일어나면 마당이되고 걸으니 길이되더라!!"
뿐만아니라 이외에도 무수한 일들이 있었고 내가 원하던 원치 않던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결실들을 거두어들이기 전에 우리는 결심들을 했고 또한 그 결심이 무디어지지 않도록 깨어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작년 한 해를 돌아보면서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께서도 당신이 결심했던대로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부터 어머니는 곰곰이 생각했고, 되새기고, 마음속 깊이 간직했던 결심이 이루어져서 결실로 드러나도록 하신 것입니다.
나자렛이라는 이름없는 시골처녀였던 마리아가 천주의 성모 마리아로 공경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계획에 따라 결심을 하고 깨어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자신을 봉헌하였기 때문입니다.
성탄팔일축제를 지내는 동안 전례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이 어떻게 사람이 되셨는지 하느님의 계획을 불 수 있었습니다.
칠일째 되던날인 어제 복음에서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가운데 사셨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저 또한 어떻게 하다보니까, 대충 살다보니까 오늘의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것입니다.
저를 여기까지 있도록 무수한 결심들이 결실을 보았기에 오늘의 제가 여기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가운데 사셨다는 것은 이미 하느님의 계획이 먼저 있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즉 달리말하자면 이름이 먼저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는 먼저 이름이 지어지고 그 다음에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름나고 사람난다는 말입니다.
먼저 결심이 선 다음에 실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반대입니다.
사람나고 이름 짓는 일도 있습니다.
어머니가 결심도 하지 않았는데 제가 태어난 거지요.
그래서 이름도 제가 태어난 다음 지었습니다.
~~~
그런데 내가 결심도하지 않은 일들을 나도 모르게 내가 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된 것일까?하는 생각에 머물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공동체의 결심에 내가 협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즉 마리아가 보여준 자기 봉헌의 삶을 오늘 나도 살기로 이미 결심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올 한해를 맞이하면서 이미 성취된 결심이 있다면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결심이 있다면 그 자체로서 깨어있을 수 있어서 행복할 수 있으리라고 희망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5/01/01 루카2,16-21
새해다!
지난 해를 거울 삼아 올 한해는 주님안에서 지혜롭게 살아갈 힘을 청하고 싶다.
항상 떠오르는 해를 보면 가슴이 벅차 오름을 느낀다.
그 감동의 물결앞에서는
내 마음도 감당할 수 없어 터질것 같은 순간이 바로 해맞이 할 때이다.
이렇듯 무엇을 보고 기뻐할 수 있음은 은총인 듯 하다.
목동들이 달려가서 본 것이 휘황 찬란한 은하수도 아니고
늘 제각제각 떠오르는 태양도 아니다.
단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와 그 부모를 본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기뻐하며 주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 전에 좋은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해맞이를 하는 것은 올 한해 좋은 소식을 듣기 위한 것이지만
목동들은 벌써 좋은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구유의 아기를 보러 간 것이다.
먼저 듣기 위해서는 목동들이 밤을 세워가며 양때들을 지키듯이
자신의 할 일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기의 부모가 아기에게 정성을 다하듯이
나는 올 한해 내게 맡겨진 모든일에
정성과 충실을 다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