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제34주간 수요일 루카21,12-19 인내로 생명을(스승)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종말이 오기 전에 일어날 징조에 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가장 먼저는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속일것이고
다음으로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날 것이며
그리고 땅에서는 지진과 전염병과 기근이 일어날 것이며
이어서 하늘에서는 무서은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며
마지막에는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될 것이며
결국에는 성전이 파괴되어 성전의 돌들이 다른 돌 위에 남아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에게 끌려가 박해를 당하게 된다는 것이 오늘 복음이 전해주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생각하노라면 심히 사는 것 자체가 재앙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될 정도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 본문만 읽는다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재앙도 아니고 땅에서 일어나는 재앙도 아닌
사람이 가져다 주는 재앙에 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박해를 당하는 것이 곧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현실적인 재앙은 곧 박해받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박해시대가 끝났다고 보는 요즘에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사람을 잡아서 끌고가서 심문하고 고문하는 일이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끌려가서 수모와 고초를 당하는데
어찌하여 나는 잡아가지 않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생각해보면 저이가 저런 힘든 고초를 겪는 것은 우상의 이름을 드러 높이려는 이들에 맞서기 때문이고
내가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박해를 받지 않는 것은 사람의 이름을 드러높이는 것을 묵인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현세에서 가장 먼저 겪게 되는 박해는 우상과도 같은 이름을 부르도록 강요당하는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 이름이 불러져야 할 자리에 인간의 이름이 불려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가장 우려했고
창립자께서 가장 걱정했던 일입니다.
사도바오로는 니편이니 내편이니 편가르기를 하면서 하느님의 이름이 아닌 인간의 이름이 불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창립자께서도 극구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방한 하셨을 때에 교황님께서도 이와 비슷한 일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주교회의장에 방문하셔서 방명록을 작성해야 하셨는데 그 때에 당신의 이름을 깨알만하게 쓰신 것입니다.
방명록은 크고 넓직한데 이름은 너무 작아서 분명히 썼지만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일어나는 박해는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하는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작은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 될 수 있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는 유혹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기도할 때에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라고 기도드리지만 막상 일상생활에서는 자기 이름이 드러나게 하려는 유혹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고 묵인될 때에 바빌론의 우상은 더욱 커지게 되고
결국 그들은 더욱 혹독한 재앙을 우리에게 쏟아낼 것입니다.
오늘 복음 본문 끝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아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인내라는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우리에게 생명이 되는 음식이 있고
아주 거창하고 대단한 것 같지만 우리에게 해가 되는 음식이 있습니다.
우리 몸에는 두가지 세포가 있는데 네추럴세포가 있고 원시세포가 있다고 합니다.
네추럴세포는 원시세포를 잡아먹는 세포라고 합니다.
하지만 원시세포는 오염된 몸/ 즉 산소가 희박한 체내에서 더욱 커지게 되고 막강해지지만 네추럴세포는 산소가 없거나 오염된 몸 속에서는 죽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영혼의 세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 몸속을 바빌론의 음식으로 채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음식이 우리 몸 속에 채워진다면 은 우리 몸속에 숨 들어갈 틈이 없어서 원시세포가 급속도로 자라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체질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하느님의 은총은 풍성하게 내려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하느님은 세상 우주 어디에도 숨어 계시는 분이 아니시지만 유일하게 우리 마음 속에 숨어계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오늘 하루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모신 숨어계신 하느님께서 활동하시도록 우리 육신을 충실히 봉헌하여 인내로써 생명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