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연중제33주일 평신도주일 마태25,14-30 하느님과의 친밀(성마리아재속회-까떼)

jasunthoma 2014. 11. 16. 13:3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부류의 사람을 통해서 하늘나라 비유를 들려주고계십니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사람/ 두탈렌트를 받은 사람/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일상생활 안에서 생각해보면 한 부류의 사람이 더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받은 한 탈렌트를 던져 버리는 사람입니다.

던져 버리는 사람에 비하면 한탈렌트라도 간직한 사람은 마땅히 칭찬을 받았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건 너무 불공평한 평가를 받은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비록 받은 것에서 더 벌어들이지는 못했지만 가진 것을 까먹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폐기하거나 받은 것을 내어 버리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동생과 동전이야기~~~

 

문제는 돈 주인을 두려워하거나 미워하는 데서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만약에 한탈렌트를 받은사람에 관해서 그토록 혹독하게 판결을 내리신다면

그 돈을 받아서 던져버린 사람일 경우에는 어떤 판결을 내려야 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저는 어쩌면 쓸모없는 종보다 더 못한 죽어 마땅한 종이나 다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생이 받아온 돈을 버리지 않고 보관만 잘하고 있어도 얼마든지 유용하게 쓸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마케팅부 서원 축복예식서 보관에 관한 이야기~~~

 

그런데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인에 관한 종의 태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을 껄끄러워 하거나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종은 그 주인만을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주는 모든 것에 대하여 미운 감정을 지니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과 친밀하고 가까우면 별 것 아닌 것을 받아도 그것을 소중히 여겨 잘 활용하고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누님과 중고자동차 이야기~~~

 

예수님께서 이렇게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 한탈렌트를 받은사람에 관하여 비유를 들려주시는 이유는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하늘나라에 가기 전에 중간고사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데에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다섯탈렌트와 두탈렌트를 받은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데 여기서 유념해서 볼 점은 주인이 둘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긴 주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칭찬을 할 때에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 . .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에서 기쁨을 함께 나누는 주인은 다른 주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탈렌트의 비유는 예수님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자주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를 일이지만

주인이 맡긴 탈렌트를 활용하여 함께 기쁨을 나누게 될 분은 하느님이 아니라 예수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지 않으면 결코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실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가진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 마저 빼앗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의 원리를 연상케합니다.

돈이 돈을 벌고 많이 벌어들이는 사람이 칭찬받는 세상이 바로 자본주의의 원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나라의 원리는 자본주의보다 더한 면이 있습니다.

만약 고리대금업을 한다면 아주 혹독한 고리대금업을 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업수완이 좋아도 자기가 보유한 원금 만큼을 더 벌어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은 종들에게 맡겨서 그정도 벌이에 그치는 것이지 하느님이 직접 움직이시면 원금의 서른배 혹은 육십배 많게는 백배까지 벌어들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은 누가 얼마를 더 벌어들였냐가 관건이 아닙니다.

누가 몇 배의 열매를 내었는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능력에 따라 최선을 다했는지를 묻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종들이 벌어들인 소출은 각자의 능력에따라 부여받은 탈렌트를 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각자의 능력을 100% 발휘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소극적인 사람을 겸손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소심하게 자신을 낮추기만 한 사람을 당신 제자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주인의 뜻대로 모든 일과를 다 끝내고 집에 돌아가면 식탁봉사를 하면서도 자신은 해야할 일은 했을 따름입니다라며 자기를 낮추는 이가 바로 겸손한 사람일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한 손으로 물레질하고 다른 손으로 실을 잣는다"고 했습니다.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주님을 경회하고 주님과 친밀한 이를 드러높이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를 100%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친밀하지 않는다면 결코 자신의 탈렌트를 다 활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이번 한주간 동안 베풀어주신 사랑에 감사드리며 그리스도의 능동적인 겸손함을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일을 시키면 어떤 사람은 잘 못한다고 하면서 막상 시작하면 아주 잘해서 좋은 결과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또 어떤 사람은 뭐 시키지도 않았는데 잘 한다고 스스로 나서서 시작해놓고 하다 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하는 일을 공동체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저는 제가 노래를잘 하는 줄 알았습니다.

몰론 지금은 많이 꺽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감으로 부릅니다.

한번은 청년활동을 할 때 본당의 날 행사에서 청년들이 노래를 한 곡 불러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들 안한다고 빼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우리가 노래를 못할 것이 뭐있냐 그냥 악보대로 부르면 되지 않느냐며 하자고 했습니다.

노래 재목은 소나무였습니다.

하나가 슬픔에 잠길때 눈물 흘리는 건 다른 또하나~~ 하나가 맘이 시려울 때 오직 필요한 건 또하나의 눈빛~~ 빛이 없으면 사라지는 그림자로는 모자라~~~

 

 

한탈렌트를 받은 사람 -> 돈 쓰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 -> 남에게 돈을 맡기지 못하는 사람

두탈렌트와 다섯탈렌트를 받은 사람 -> 돈을 잘 쓰는 사람  -> 남이 돈을 쓰도록 잘 맡기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