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연중제21주간 화요일 마태 23,23-26 속의속(딸)

jasunthoma 2014. 8. 26. 05:19

요즘은 속병을 앓는 분들이 많습니다.

속의 속병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속의 겉병이기도 합니다.

이는 겉이 심하게 훼손 되었는데 속에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속을 들여다 본다고 하지만 겉만 보고 깨끗하다고 진단합니다.

 

지인 한 분이 맹장이 파열되어 수술을 하다가 대장 겉에 붙어 있는 젤형 종양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장내시경을 했는데 그 때는 아주 깨끗하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장을 비워냈으니 깨끗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것이었겠지요.

뭐든지 비워내고 보면 깨끗해 집니다.

지금은 마음을 비웠다고 하면서 밝은 표정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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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가 사람 속을 들여다 보기 위해서 실시하는 각종 건강검진은 실은 겉만 훌터 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바깥에서 받아들인 것은 모두 바깥으로 나가버리기 때문에 흔히 우리 속에 담아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흐르고 통하는 모든 곳은 속이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시작과 끝이 개방되어 있는 것을 물리적 힘으로 막아 놓는다고해서 그 내부가 속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혈관도 마찬가지이고 뱃 속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렇다면 피부를 통해서 수분이 증발하고 땀이 흐르기 때문에 인체의 어느 한 곳도 속이라고 볼 수 있는 곳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곳은 속이 아닙니다.

 

겉이 아니라 정말 속에 해당되는 것은 마음이고 정신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 조차도 본질은 아닙니다.

본질을 담아두는 그릇에 불과합니다.

그 그릇에 담긴 본질에 따라서 우리는 거룩해지기도하고 탐욕스러워 지기도 할 것입니다.

거룩함과 자애로움 탐욕과 방종 이는 모두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입밖으로 혹은 행실을 통해서 몸 밖으로 나갑니다.

거룩한 것이 들어오면 기쁨과 찬양 자애와 미소가 되어 나갈 것이고

탐욕이 들어오면 시기와 질투 저주와 비웃음이 되어 나갈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계속해서 꾸짖으십니다.

그것은 그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 예물인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는 좀처럼 바치려하지 않고 박하/시라/소회향 같은 향기나는 예물을 바치기를 즐기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약간만 봉헌해도 향이나는 드러내기 좋은 예물을 즐겨 바칩니다.

적은 노력으로 큰 이득을 챙기려는 이들의 모델입니다.

 

사회적 불의는 적은 노력으로 많은 이득을 취하려는 경제적 탐욕에서 시작됩니다.

이에 관해서는 교회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봉헌예물이 들어옵니다.

미사를 드려달라는 것입니다.

미사만 평생토록 드려도 예물이 넘치도록 후하게 들어옵니다.

미사를 봉헌하는데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잔과 접시의 겉을 항상 깨끗이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충실한 일꾼은 손쉬운일 가벼운 편한 일을 찾아 다니지 않습니다.

사도 바오로처럼 고난을 겪고 모욕을 당하였지만 '격렬히 투쟁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합니다.(1테살2,2)

그 이유는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내는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내 잔 속을 깨끗이 하는 일은 다름이 아니라 잘 드러나지 않는 예물인 믿음을 지키는 일입니다.

신의를 지키는 일이야 말로 속을 깨끗이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어제 저녁 성무일도에 우리의 잔 속을 깨끗이 하는 이는 어떤 사람인지에 관하여 노래했습니다.

 

"해 돌아올 맹세라도 어김없이 지키는 이

길미를 받으려고 돈을 놓치 않는 이,

무죄한 이 다칠세라 뇌물 받지 않는 이오니

이같이 하는 그 사람은 쓰러질 리 없으"(시14.)며

당신 장막에 묵을 이 이며, 거룩한 당신 산에 살 이 일 것입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속을 훤히 들여다 보시는 하느님의 영광으로 우리의 겉모습도 깨끗해지고 밝아 질 것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탐욕없는 순수한 그리스도의 향기인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를 봉헌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