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연중제18주간 화요일 마태15,1-2.10-14 생명과죽음(스승)

jasunthoma 2014. 8. 5. 03:48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 심지않으신 초목은 모두 뽑힐 것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하느님이 심은 초목은 뭐고 심지 않은 초목은 뭘까요?

이에 관해서는 창세기 에덴동산 이야기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돋게 하여라"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하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하느님께서는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하고 얘기 합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는 동산 한가운데에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런다음 사람에게 명령하시기를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에서는 따먹으면 안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이렇게 뱀의 속임수는 금지조항을 확장시키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위태롭게 만드는데 있습니다.

여자가 대답합니다. "아니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뱀의 속임수를 알아차린 여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옹호하려고 하면서 보호본능을 발휘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먹지마라"까지만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만지지도 마라"는 금지조항을 붙여 하느님의 말씀을 애써 지키려고 한 것입니다.

뱀의 속임수가 확장되어 하느님의 말씀에 실천 조항을 덧붙여 진 것입니다.

결국 뱀의 속임수는 대답을 회피할 수 없도록 올가미를 씌운 다음 죄를 스스로 짓도록 유도하는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이 심지 않은 초목의 씨가 뿌려져 열매맺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생명과 죽음에 관해 말씀하시는데 유혹자는 언제나 죽음에 관해서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이 심지않은 초목은 다름이 아니라 죽음을 담보로 이득을 챙기려는 바리사이의 누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습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어깁니까?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습니다"

이 논쟁의 질문에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손을 씻지 않는다는 말은 자칫 정결례와 관련될 수 있는 소지가 있습니다.

율법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해 정결해야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레위11-15장).

그러나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규정은 레위기나 율법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손씻는 일은 조상들의 전통이라 불리는 관습법에 속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따졌던 질문을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군중들에게 던진다면 대부분 정결례의 올가미에 걸려들 소지가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손씻는 일을 일컬어 정결례라 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희 조상들의 전통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난 다음 사람들의 불결함을 지적하기 때문에 손을 씻지 않은 사람은 부담을 느끼게 되고 스스로 확대 해석할 수 있도록 유도 될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결국 손을 씻지 않으면 왠지 불결한 사람 취급을 받게되고 또 그로인해서 정결하지 못한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기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죽음이 생명을 결코 더럽힐 수 없다는 의미를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