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사순제4주간 목요일 요한5,31-47 (바딸// 250403 바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그들이 당신을 믿지 않는다며 유다인들의 믿음을 지적하실까요?
그리고 무엇때문에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표징을 보고도 예수님을 받아들이려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미 세차례에 걸쳐 아버지로부터 오는 표징을 보여주신 바 있습니다.
카나에서 포도주를 채워주시고, 왕실관리 아들을 살리시고, 베자타 못가에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표징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예수님을 믿지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 할까요?
오늘 제1독서에서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수송아지 상)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며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주님이 보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으려한다는 것입니다.
이집트 노예 살이에서 해방시킨 모세의 공적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차라리 수송아지를 인정하지 모세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탈출에 동참했던것은 억압에서 풀려나고 싶기도 했지만 잘먹고 잘사는 에덴 동산을 꿈꿨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나와보니 이상과는 다르게 현실은 비참했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할 명분은 좋았으나 나와보니 실리가 없어보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복음에서도 유다인들은 이미 보여준 예수님의 표징들을 인정하지 않으려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에게 직접적으로 혜택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오늘 복음에 이어서 나오는 네번째 표징을 통해서 대부분 예수님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오천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 빵의 기적을 통해서는 그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제 한국의 노벨상으로 불리고있는 호암상 수상자가 선정되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역대 수상자 중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신 안나의집 김하종 신부님이 사회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페이스북에 기사를 올렸더니 안나의 집 홍보대사로 임명되었다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바오로의 집은 홍보 안하고 안나의 집을 홍보한다고 누군가가 시샘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요?
제가 김하종 신부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분의 겸손하시고 양순하시고 자기 헌신적인 삶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표양을 선망하기도 하지만
작년에 찾아 뵈었을 때에 신부님으로부터 짜장면을 한 그릇 얻어먹었기 때문입니다.
명분도 좋았지만 실리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안나의 집만 홍보하고 바오로 가족은 홍보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드러나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우리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못미더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의 실재 신앙생활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느낄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시니까 그런 표징을 일으키실 수 있었지 예수님도 안계신 지금에 와서 어떻게 성경 말씀이 그대로 일어나겠는가?하며 우리의 믿음을 하나의 사치품으로 생각하려는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말씀은 말씀이고 생활은 생활이지 라며 왠만하면 말씀과 생활이 따로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차원이 전혀 다른 세계로 이해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없이 실리만 추구하다보면 모두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십니다.
하지만 말씀을 잘 간직한다면 지금 배고프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배부르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말씀과 실천이 하나될 수 있는 시간이 될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증언 - 마르튀레오 - 표명/증언/기록물/
증거 - 마르튀리아 - 순교/증거/증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