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제7주간 월요일 마르9,14-29 (250224 부산협력)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실때에 기도를 드리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슨 기도를 어떻게 바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벙어리 귀머거리 아이를 위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몇가지 알려주고 계십니다.
첫째, 기도는 경청입니다. 논쟁이 아니라 경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제자들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학자들과 논쟁을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차분히 들으셨습니다. 듣고 보니 당신이 산에서 내려오시기 전에 다볼산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실 때에 제자들은 더러운 영에 시달렸던 것입니다. 마치 모세가 시나이 산에 올라갔을 때에 이스라엘이 번쩍이는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현혹되었던 것처럼요. 모세가 눈에 보이지 않자 불안했던 것입니다. 눈이 밝으면 귀가 어둡고 눈이 어두우면 귀가 밝아진다고 합니다. 물론 정상인은 둘 다 좋습니다. 하지만 정상인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어디에 집중하는지에 따라서 눈이나 귀 중에서 한쪽만 작동하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제자들은 귀가 아니라 눈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해봅니다. 아이가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면서 몸이 뻣뻣해지는 것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경청을 하십니다. 경청은 어떻게 합니까???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귀를 기울인다는 말은 말 그대로 귀를 상대방에게 집중한다는 의미입니다. 잠시 눈을 멀게 하고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도는 만남입니다.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하니 사람들이 벙어리 영이 들린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셋째는 기도는 이해하고 받아들임입니다. 예수님은 그 아이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는지를 물으십니다. 본문에는 파이디온/어린아이 때부터 그랬다고 합니다. 처음에 아이 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소개할 때에는 휘오스/아들 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아이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예수님께 어린아이 때부터 그렇게 되었다고 소개하고 나서는 아들이라는 말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넷째는 기도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해되지 않는 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곧 믿는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시자,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라고 그 아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때에 그 아이는 아들(휘오스)이 아니라 어린아이(파이디온)입니다. 그러니까 정상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랐던 상상속의 아들이 아니라 어렸을 때에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지던 어린아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믿음입니다. 그러한 용기가 곧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기도는 꾸짖음입니다. 꾸짖음으로 악령을 쫓아냄입니다. 꾸짖지 않고는 어떤 방법으로도 악령을 내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꾸짖는데 어떻게 꾸짖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꾸짖으시는 모습은 마치 돌에게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과도 같습니다. 왜냐하면 듣지 못하는 벙어리 귀머거리에게 말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소귀에 경읽는 격입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영에게 말씀으로 호통을 치시는 것입니다. 사실은 아이의 아버지에게 호통을 치신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아이는 들을 수 없고 말을 할 수 없지만 그의 아버지는 들을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영을 쫓아 낸다는 것은 그만큼 비상식적이고 어이없는 활동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들이 현실적으로 가능합니까??? 예수님께는 가능하시지만 제자들이나 우리들에게 가능할까요???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여러분들이 벙어리 귀머거리 악령이 들린 정신장애를 가진이에게 그렇게 호통을 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능하지만 우리는 불가능일 것입니다. 병자에게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병든 사람이 아니라 건강한 나 자신이 병든 사람이 되는 것은 가능합니다. 눈을 병자의 눈에 맞추고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종신서원 피정 - “루카복음과 함께하는 40일 기도”
이렇게 경청/만남/이해/믿음/꾸짖음 의 다섯가지의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악령을 나가게 할 수 없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마태4,10)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마르1,25) “잠잠해 져라. 조용히 하여라”(마르4,39)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마르5,8)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8,33)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마르9,25)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르1,41)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2,5) “나를 따라라”(마르2,14) “손을 뻗어라”(마르3,5)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마르5,34) “탈리타쿰!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마르5,41)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버려라”(마르6,11)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6,31)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르6,37)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르6,50)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마르7,29) “에파타! 열려라!”(마르7,34) “너희는 주의 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마르8,15) “막지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마르9,39)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말고 그냥 놓아두어라”(마르10,14)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10,21)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10,52)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르12,17) “무슨 말을 할까 미리 걱정하지 마라”(마르13,11) “이 여자를 가만 두어라”(마르14,6)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마르14,34)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1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