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제1주간월요일 마르1,14-20 공생활(대전협력)
제자들의 공생활은 지금까지 호수에 던지던 그물을 이제는 던지지 않는 데에 있지 않다.
지금까지는 호수 아래 저 깊은 어두움속으로 그물을 던졌지만
이제는 호수 저 위에 펼쳐진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그물을 던져야하기 때문이다.
그소리 온누리에 울려 퍼지고 온세상 땅끝까지 번져나가네.
3년간 부산에 머물면서도 어디 밖같을 나가 돌아다녀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한강에도 자전거 길이 있지만 부산에도 자전거 길이 잘 발달되어있습니다.
온천천을 타고 내려가다보면 수영강과 합류하는데 강 끝자락에 광안리 해변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기대를 지나 신선대 오륙도 태종대 남항대교까지 쭉 지나갔습니다.
멋있습니다.
그런데 강변이나 해안길을 가다보면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특징적인 풍경이 있습니다.
부산에는 낙시꾼들이 많습니다.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바닷가 경치도 좋지만 쉬엄쉬엄 가다가 낙시꾼 아저씨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가 소솔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하는 말들이 많이 못잡았다는데 일치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은 모두 호숫가에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제 같으면 한 번은 호숫가에서 뽑고 한번은 농장이나 마을 가운데서 뽑아서 누가 보더라도 첫 제자인만큼 편중되지 않게 골고루 뽑았다는 인상을 받도록 했을것 같습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첫제자들을 호숫가에서 일하던 어부들 중에서 뽑습니다.
그런데 갈릴레아 언덕위에 포도밭도 있고, 목장도 있고, 마을 한 가운데에 회당과 시장도 있었을 텐데 왜 호숫가를 선호하셨을까요?
그것도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두번씩이나 연속적으로 호숫가에서 어부들을 택하셨을까요?
어부라는 직업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불안하고 위험한 직업입니다.
직업이 불안하고 위험하면 소득이라도 충분해야할텐데 그렇지도 못합니다.
오늘 이정도 잡았으니 내일은 어느정도 잡히겠구나라는 계획은 아예 세울수도 없습니다.
물고기들이 생각대로 잘 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숫가는 불안한 경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대표성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는 어부들 중에서 네명이 오늘 예수님의 첫 제자들로 발탁이 됩니다.
그들은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낚았으나 예수님께서는 호숫가에서 사람을 낚으신 것이지요.
불분명한 경계에 머물러 있던 제자들을 분명한 삶에로 초대하신 겁니다.
불확실한 삶을 살던 그들을 확실에 찬 삶을 살도록 부르신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놓고 공생활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기 전에 이미 공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요한이 잡힌 뒤에 갈릴레아에 가시어 처음으로 복음을 선포하실 때에는 제자들이 없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자없이 복음선포를 하셨습니다.
물론 제자를 뽑으신 뒤에도 언제나 예수님은 혼자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활은 외롭고 고독했습니다.
어부들이 바다에 그물을 던질때보다 더 불안했고 불분명했습니다.
얼마동안 그랬을까요?
예수님의 인성이 온전히 죽으실 때까지 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다음 다시 살아나실 때까지였다는 것을 흔히 들어왔기에 이제 그리 놀라지도 않습니다.
오늘 선택된 제자들 역시 예수님의 그러한 삶을 닮을 것입니다.
인간 베드로가 온전히 죽고, 안드레아의 인간성이 온전히 죽을때,
인간 야고보가 온전히 죽고, 요한의 괴팍한 성질이 온전히 죽을 때에 예수님의 공생활은 비로소 이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언제 죽었었는지를 살펴보고 예수님의 공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05/01/03 [ 최고 기쁜 소식 ] 마태4,12-17.23-25
국민당 장제스와 일본으로 분할 되었던 중국은
마오쩌뚱의 홍군 대장정으로 공산당의 지지세력을 확보했다.
마오쩌뚱은 중국 본토를 뒤로한체 남부와 서부에서 북부로 세력을 넓혀갔는데
낙후된 농촌에서 기계를 고쳐주며 농민들의 계몽에 투신했다.
이렇게 소외된 외지에서부터 시작된 공산당 혁명은
전 중국을 공산주의로 물들이며
든든한 경제지원을 받던 국민당 장제스를 대만으로 몰아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은 나라의 큰 기반이고
흔들리지 않는 정신인것 같다.
세례자 요한이 유다 근교에서 설교를 했던 반면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의 갈릴레아로 가셨다.
모든 상권과 부를 거머쥐고 있던 예루살렘을 뒤로한체
그날 하루하루의 생업으로 먹고사는 갈릴레아 호수가를 택하셔서
병자들과 허약한 이들을 고쳐주셨다.
그러자 사람들은 중풍병자와 마귀들린 사람들까지 데려왔다.
단지 일반적인 병자를 고쳐주었는데
사람들은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까지 데려와서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병에서 치유를 받음으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변화했다.
이렇게 복음은 아주 일상적인 생활에서 시작하지만
믿는 사람들의 갈망으로 하여금
세상에서 최고 기쁜 소식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느낀다.
2005/01/10 [ 부지런하고 섬세한 제자들 ] 마르1,14-20
교육열이 높아진 만큼 가르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교사는 모든 면에서 학식이 있지만 주로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가르친다.
하지만 많이 배웠다고 해서 자신의 삶이 완전할 수는 없다.
누구든 더불어 살아야 하는데
지식이 이웃과 친교를 나누는데 큰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이론으로 가르치는 교사보다
자신의 삶에서 베어나오는 사랑으로 자녀를 가르치는 부모가
더욱 나은 선생님이리고 생각한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하시자
예수님을 따라나선 제자들은
쉴세없이 그물을 던지는 부지런함과
곧 그물을 던지기 위해 손질하는 꼼꼼함으로 주님의 선택을 받은 것은 아닐까?
사람을 낚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다 통할 수 있는
호감이 갈만한 미끼가 있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지식많은 사람보다 네명의 제자들에게서 발견한
부지런함과 꼼꼼함을 눈여겨 보신것이 아닐런지...
다분히 세월을 낚는 강태공이 아니라
부지런하고 섬세하게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해줄 제자들을 양성하시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