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대림제3주간 월요일 마태21,23-27 하늘과 땅의 권한 (241226 스승)

jasunthoma 2013. 12. 16. 08:15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권한과 세례자 요한의 권한에 관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당신의 권한이 하늘에서 왔느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왔느냐 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드실 때에 요한이 아니라, 수석사제들에게 먼저 그 권한에 관하여 물었다면 그들은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예를 들어 수석사제들에게 너희들이 제단에서 번제물로 바치는 제사는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고 물었다면 그들은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그들은 분명 창세22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명을 받들어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했던 장면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칼데아의 우르에 살다가 길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옮겨가서 제단을 쌓고 처음으로 번제물을 (창세22,2) 바쳤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제단을 쌓고 번제물을 바쳤던 인물은 노아 (창세8,20)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노아가 번제물을 바쳤던 장소를 생각해보면 산꼭대기였음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바치려고 제단을 쌓았던 곳도 모리아산 꼭대기 였고,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가장 먼저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던 곳도 아라랏 산 (창세8,4) 이었습니다.

아라랏 산은 코카서스 산맥 봉우리 (las cumbres del Caucaso: 구글지도-엘브루스산 5,642m 유럽에서 가장높은 산)로 추정하는데 -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를 길쭉하게 연결하고 있는 산맥입니다. 성서지도를 크게 놓고 보면 북쪽에 코카서스 산맥이 있고 그 아래 아라비아 반도가 길쭉하게  내려와 있는데, 그 위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결쳐 있는 곳입니다. 지금은 이 산맥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가 위치해 있고 북쪽에는 러시아가 위치해 있는 곳입니다. 그 산맥의 봉우리 중에서 아라랏 산은 신들의 거주지로 여겨졌으며 노아의 방주가 도달했던 봉우리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노아는 이 아라랏 산에서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봉헌물을 골라 번제물을 올렸던 것입니다. 

현재 구글지도에 검색되는 아라랏산은 튀르키에 있는 가장 높은 산 아라라트(5,137m) 산으로 또한 노아의 방주산으로 알려져있는 산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성전 정화를 생각해보면 그 권한은 두 가지 지향점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세례자 요한의 세례는 창세기 아담과 하와가 살던 에덴동산을 지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셨던 지상낙원에서 아무런 죄에 물들지 않고 살았던 에덴동산을 지향하면서 세례자요한은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성전정화의 권한 또한 에덴동산을 지향하지만 다른점이 있다면 에덴동산 이후에 있었던 타락한 인류를 위해 번제물을 바치던 성소제단을 지향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 당신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바대로 성전정화는 당신 자신의 몸을 두고 비유적으로 하신 말씀이시라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이후 노아와 아브라함이 산꼭대기에 제단을 쌓고 자신의 가장 정결한 봉헌물을 번제물로 바쳤던 것과 같이 예수님은 요르단 강이 아니라 예루살렘 산꼭대기에서 당신 자신이 직접 정결한 봉헌물이 되시고 희생제물이 되시에 번제물로 바쳐질 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성전을 정화하시고 사람들 또한 그렇게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첫째 아담은 흙으로 창조되어 땅을 살리는 권한을 받았고, 둘째 아담은 당신이 번제물이 되어 우리 영혼을 살리는 권한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의 세례는 인류를 위한 예식으로 수동적인 정화예식이라면, 예수님의 성전정화는 자기 자신을 위한 자발적 성화예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에서 벌어지는 세가지 이례적인 행동을 허용하셨을 뿐만아니라 직접 행하셨습니다. 첫째는 예루살렘 입성입니다. 둘재는 상인들 추방입니다. 셋째는 그들을 꾸짖고 나무라고 저주하시는 일입니다. 이 세가지 이례적인 행동을 통해서 병자들이 낫고 고통받는 이들이 풀려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의 권한은 하늘에서가 아니라 혹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사람을 통한 하늘에서 나오는 권한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통하지 않고 하늘에서 직접 그 권한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언제든지 이례적인 행동을 통하여 그것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한을 잘 활용하여 우리마음속에 들어앉은 권위주의를 몰아내고 정결한 마음으로 성탄을 잘 준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04/12/13 마태21,23-27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바다와 공중과 땅에 모든 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창조 때 부터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여러가지 권한을 받았다.

물론 권한이 있는 만큼 의무도 있다.

그런데 하느님은 사람을 다스리는 권한은 인간에게 주지 않으셨다.

당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주권이며

그것을 받은 우리는 스스로를 속박할 수 없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번성하는 동안 서로의 자유를 빼았았다.

자유로울수 없는 몸이기에 매일 구원해 줄 수 있는 메시아를

기다리며 말씀에 목말라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고 하신 예수님만이

사람을 가르치고 고쳐주실 수 있기 때문에 내 마음에 멤도는 것이다.

'나는 돈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나자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어가시오.'하며 앉은 뱅이를 고친 베드로 처럼

주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에게는 삶의 자유를 다시 찾고

예수의 권한을 누릴 수 있는 복이 있는 것이다.

또한, 날마다 속박하는 내 생활을 고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