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제32주간 목요일 루카17,20-25 하느님의 나라(딸)
본가에 다녀오신 수녀님이 학교에 감귤을 가져오셔서 나누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수녀님 집이 제주도이신데 집에서 기른 귤인데
껍질이 얇고 거칠면서 아주 탱탱한 감귤이었습니다.
몇개는 학교에서 먹고 나머지는 책상 밑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깜박 잊고 한 참 지난 후에 책상 밑에서 귤이 나왔는데
귤이 그 때 그대로 였습니다.
공동체에 들어온 귤은 박스를 열자마자 뭉그러진 귤부터 먹기 시작하면 다 먹을 때까지 성한 것이 없을 정도록 빨리 먹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서 수녀님이 주신 귤은 잊어버리고 놔두었다가 먹어도 처음 그대로의 맛과 향을 간직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하느님의 나라에 관하여 몇 가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연 하느님의 나라는 언제 올까요?
대부분 믿는 이들은 자기가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쨘~ 하고 나타나서 불의하고 부정한 세상을 깔끔하게 심판해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늙어만 가고 주위를 보면 다들 죽어가는데 하느님의 나라가 오기는 커녕 사악하고 못된 일을 하는 사람이 더 떵떵거리고 잘 살고
힘 없고 가난한 이들은 더욱더 비참하게 혹사 당하는 일만 늘어가는 것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가 죽은 후에 오는 것이라는 분위기에 눌리게 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에 관하여 몇 가지 안을 제시하십니다.
첫째는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둘째는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우리) 가운데에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 처럼 온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앞서서 하느님의 나라를 갈망하는 사람은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겨울 산행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입회할 때에도 이불은 가져오지 않았지만 침낭은 가져왔습니다.
입회해서도 몇 차례 한 겨울에 산을 찾았습니다.
한 번은 한 겨울에 설악산 서북능을 탄 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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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는 전쟁이 일어났는데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나라는 온갖 눈보라가 몰아쳐도 결코 뚫고 들어올 수 없는 견고한 껍질로 감싸고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내 안에 들어오는 순간 하느님의 나라는 옵니다.
그런데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지 않는다면 그 하느님 나라는 쉽게 허물어지고 말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이미 하느님의 나라에 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빛의 갑옷/ 지혜의 갑옷을 챙겨입고 올 겨울을 잘 준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