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제24주간 월요일 성고르넬리오교황과..순교자기념 루카7,1-10 기도의 삶-(스)
여러분들은 기도가 이루어 진 적이 있습니까?
기도를 드렸는데 기적처럼 이루어진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한 번은 제가 청원기때 수도원 사도직장 건물에 불이난 적이 있었습니다.
흡연장소인 재떨이에서 불이 붙어 창문을 타고 사무실로 안으로 불이 번졌습니다.
그때는 저녁 묵상 기도시간이었는데~~
다들 불끄러~~
어떤 수사님 한분은 다시 성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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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 수사님의 기도가 바라던 대로 이루어진 것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어떤 백인대장은 예수님께 두 그룹의 대리인들을 보냅니다.
먼저는 유다인의 원로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자신의 노예를 살려주십사고 청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자기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재차 아뢰면서 그저 말씀만으로 자신의 종이 낫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자기 집으로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는 백인대장이 두 그룹의 대리인들을 보내면서 처음에는 예수님이 직접 와서 살려달라고 한 것입니다.
긜고 두번째 친구들을 보낼 때에는 말씀만으로 자신의 종을 낫게 했습니다.
백인대장이 자기가 직접 예수님을 찾아 뵙지 않고 그의 친구들과 유다인의 원로들을 보낸 이유는 자신의 노예를 극진히 사랑해서 환자 옆을 떠날 수가 없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노예를 위해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친구들을 보내서 예수님께 아뢰올 때에 그는 그저 말씀만으로 자신의 종을 낫게 해달라고 간청했기 때문입니다.
말씀만으로 낫게 해 달라는 것은 기도해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백인대장이 직접 예수님을 맞으러 나가지 못한 것도 소중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두고 차마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기도드리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기도가 부족함을 느낀 것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나는 기도를 할 테니 그대들은 예수님께 가서 한 말씀만 해 달라고 부탁해 주기를 바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백인대장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던 군중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열왕기에서 시리아의 군사령관 나아만이 병을 고치러 갔을 때를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그 때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사람을 내보내어
"요르단강에 가서 그 강물에 일곱 번 몸을 씻으시오.
그리하면 새살이 나서 깨끗하게 될 것이오."하고 전한 바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예수님께서 무익한 종을 살리시러 직접 찾아가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인 대장은 말씀만으로도 치유되리라는 믿음을 보였습니다.
분명히 백인대장의 믿음은 거져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행위 중에 가장 아름답고 선한 모습은 기도하는 모습이 아닐까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시간이야말로 피조물이 치유되는 가장 복된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모습이 떠오른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특별한 은총을 받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순교라는 것도 죽기까지 기도하는모습에 다름 아닙니다.
죽는 순간까지 기도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 바로 참된 순교임을 일깨우며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기도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서 우리의 삶을 봉헌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