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다해 연중제20주간 토요일 성바르톨로메오사도축일 요한1,45-51 진실한 기도(성바)

jasunthoma 2013. 8. 24. 04:49

오늘 복음에서 나타나엘은 필립보로부터 예수님을 소개 받자 시큰둥한 반응을 보입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나자렛을 무시하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나타나엘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반에 걸쳐서 나자렛이라면 무시해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깔려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요한 복음 21장2절에 의하면 나타나엘 자기는 갈랄레아 카나출신이었습니다.

카나 또한 나자렛만큼이나 뭐 대단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는 시골이었습니다.

나자렛이나 카나나 비슷한 시골 마을에 불과했습니다.

아니 카나가 오히려 나자렛보다 더 시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저같았으면 '사돈 남말하고 있네'

뭐 묻은 개가 재묻은 개 나무라고 있네라며 맞받아 쳤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타나엘의 비웃음에 예수님께서는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나타나엘은 약간 당황했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타나엘 자신은 예수님의 출신 지역에 빗대어 예수님을 비하하며 코웃음을 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숨김없이 말하는 나타나엘을 오히려 거짓이 없는 사람으로, 속임수가 없는 사람으로 인정하시며 칭찬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의 선조 아브라함이 하느님과 계약을 맺을 때 이와 비슷한 광경이 나옵니다.

아니 내 “나이 백 살에 아들을 보다니! 사라도 아흔 살이나 되었는데 어떻게 아기를 낳겠는가?”하며 아브라함은 엎드려 주님을 비웃었습니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몸종에게서 난 이스마엘이나 당신의 귀여움을 받으며 잘 살게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즉 현실 가능한 일이나 일어나게 해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어쩌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진실 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의 진실된 기도를 듣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한 몸으로 두 마음을 품고 한 마음인 것처럼 기도를 올리는 사람을 올곧게 보실 리가 없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숨김이 없는 기도, 거짓이 없는 기도, 속임수가 없는 기도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모습을 보시고 오히려 당신의 제자로 삼으십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시련이 왔을 때 두마음을 품지 않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예수님은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그러한 소양을 지닌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둠속으로 들어가더라도 빛이신 예수님이 들어오시면 훤히 다 드러나버립니다.

 

하지만 이러한 숨김없는 기도를 거침없는 기도는 우리의 신앙을 더욱 돈독히 하는데에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은 괜찮다 할지라도 우리 형제들은 힘들어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속을 훤히 들여다 보시지만 우리의 헝제들은 예수님만큼은 자비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 보는 사람을 알아봅니다.

먼저는 스승님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의 아들 즉 사람의 아들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속 진실한 기도를 바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