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부활제6주간 월요일 요한15,26-16,4ㄱ 성령과함께
어제는 어린이날이었는데 아이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놀이 공원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니 저도 기뻤습니다.
제가 어린이였을 때에는 청룡열차 한 번 타보는게 소원이었는데 못탓습니다.
그저 어린이날이면 무료로 개방하는 공원에 어머니 손잡고 따라다니며 사람구경만 실컷 하다가 점심때가 되면 짜장면 한 그릇 얻어먹고 돌아오는게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왜냐하면 엄마와 함께 하루종일 세상구경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날이 아니고서는 저혼자 맨날 돌아다녀봤지만 재미없습니다.
어린것이 보호자도 없이 어디 돌아다녀봐야 사람대접 못받는다는 것을 깨닫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괜히 혼자 나돌아 다녔봤자 무시만 당하거나 얻어 맞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보호자이신 진리의 영이 오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예수님은 당신이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남겨두시고 하늘에 올라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실 때의 일을 미리 알려주십니다.
이제는 더이상은 처음의 예수님 그모습대로 나타나지 않으신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가끔은 몰라보기도 할것입니다.
당신이 오셨는데도 몰라봅니다.
왠지 힘이나고 신나서 기쁘고 즐거운데 그냥 저절로 그리되는 줄만 알지 그때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자렛에서 사시던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오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우리의 성령으로 오신 보호자가 함께 계십니다.
우리의 보호자이신 진리의 영은 곧 성령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사람은 보호자가 필요합니다.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서 숨어지낼 때에도
그리고 주일을 지키러 회당에 나갔을때에도 성령이 필요합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는 다락방에 숨어지내며 아무말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회당에서 쫒겨날때에도 그어떤 증언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리디아는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자 그의 보호자로 사도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성령과 함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보호자가 없이는 어디에도 나갈 수가 없습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어떤 항변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밖에 나가도 인정받지 못하고 대접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를 이끌어 주시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행복해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은 거나 다름 없습니다.
즉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까이 오시어 "성령을 받아라"하고 말씀하셨듯이
보호자이신 진리의 영이 오셔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증언하면 우리도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 때가 언제입니까? 하고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 본문에서는 사람들이 너희들을 내쫓을 때 아버지께서 보내신 보호자, 즉 진리의 영이 오신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쁘고 즐거움이 넘치는 곳이 아니라 박해와 환난과 핍박을 받을 때에 보호자이신 진리의 영이 오십니다.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예수님을 위해 증언하시고 이어서 제자들도 예수님을 증언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아버지를 증언하셨듯이 진리의 영, 즉 성령 또한 증언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이 아무리 훌륭하고 영광스럽다고 하여도 성령이 증언하지 않으면 안되듯이
마찬가지로 우리가 부르지 않으면 우리의 보호자는 다시 오실 수가 없고 우리가 증언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성령을 어떻게 부르는지 알고 있습니다.
아이가 "아빠" 혹은 "엄마" 하고 부르듯이
단지 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고만 하면 된다는 것을 하느님의 자녀는 본능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리고 언제 성령을 불러야 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세상의 세력들로부터 박해를 당하고 쫓겨날때가 온다고 했습니다.
그 때가오면 집안에서든 직장에서건 식당에서건 장터에서건 우리의 보호자를 불러서 부활하신 주님을 증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보호자 성령과 함께 힘차고 기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