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부활제5주간 토요일 요한15,18-21 미운사랑
여러분들은 누구를 미워해본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요즘은 누구를 미워해본 적이 있는지를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미운 사람이 많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움의 조건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냥 바라만 봐도 미운 사람이 있습니다.
뭐 잘못한 일도 없는데 괜히 미운겁니다.
자기 눈에 가시가 돋혔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가시입니다.
자기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사랑의 가시가 돋은 겁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제자들은 미움을 받을까요?
구약의 규정을 따르지 않고 새계명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어떤게 새계명입니까? 13장 34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바와같이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입니다.
그러면 구약의 규정에 비해 예수님의 새규정에서 달라진 점은 무엇입니까?
구약에서는 이스라엘만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 이스라엘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신약에 와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새규정이 생겼습니다.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될뿐만 아니라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을 먹어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게 되었습니다.
몰론 예수님이 정해준 것은 아니고 사도들이 예루살렘 회의를 열어서 논의한 끝에 정한 규정입니다.
그런데 이 규정은 이미 예수님의 새계명 안에 다 포함되는 규정이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되 이웃은 미워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인 이스라엘이 아니면 함께 음식도 못먹게 했습니다.
자기 후손이 하늘에 별만큼 바다의 모래만큼 생겨나리라고 하느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은 무엇이든 다 듣고 지켰습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사랑하듯이 자신또한 사랑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여라고 가르쳤습니다.
당신이 사랑하신 것 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되 자신은 미워했습니다.
항상 예수님은 하느님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보는 사람은 자신을 미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보고 자신을 미워하는 그 힘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자신을 미워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신을 아예 미워해버릴때 아무리 미운 사람이 있어도 용서가 가능해 집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가 하느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으면 아무리 형제가 훌륭한 성덕을 지니고 있어도 그는 나를 깍아내리는 경쟁자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을 바라보며 조금 더 형제를 사랑할 수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