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다해 부활제3주간 토요일 요한6,60ㄴ-69 말씀만으로

jasunthoma 2013. 4. 20. 05:48

무슨 일을 처음으로 시작 할 때에 스스로 알아서 하는 사람이 있고 꼭 누가 하자고 해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알아서 척척 일하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또 그런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에 있어서는 조금 다른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이 성당을 다니더라도 어떤 사람은 알아서 성당을 잘 나가는 사람이 있고 꼭 누가 가자고 말해야 가는 사람이 있고 가자고 해도 안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의 정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입니다.

가지고 해도 안가는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믿음에 있어서만큼은 스스로 알아서 성당을 다니던 사람은 나가지 않을 때에도 알아서 그렇게 안나가는 것을 당연히여깁니다.

이렇게 자기 주관이 뚜렷해서 주위에서 만류해도 남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누가 가자고 해서 성당을 다녔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하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말을 듣게되자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떠나갑니다.

오천명을 먹이실 때만 해도 모두가 기쁨으로 충만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빵의 기적 이후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 수록 예수님은 더이상 빵의 기적을 베풀지 않으십니다.

물론 다른 복음에서는 한 번 더 배불리시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없습니다. 

배가 고픈데도 말씀만 하시지 빵을 배풀리 내어주지 않으십니다.

마르타가 배가고플 때에도 예수님은 마리아와 이야기만 하신 적이 있습니다.

뭐가 먼저인지가 서로 다릅니다.

대부분은 믿음도 좋치만 제때에 먹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앞섭니다.

알고보면 그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믿었던 것입니다.

배를 채우고 나면 뭐든지 시시해 집니다.

다른 것보다 말씀은 더 보잘것 없어집니다.

아무리 말씀이 생명이라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배고플때에 말씀을 먹지 못하면 배부른 다음에는 말씀을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말씀을 믿기보다 빵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결국 처음부터 예수님으로부터 불림을 받은 열 두 명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중에는 유다도 끼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예수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불리움을 받았기때문입니다.

내가 저분을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예수님께 가까이 온 사람들은 떠날 때에도 알아서 잘 나갑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어 주님을 따르게 된 사람들 다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되었기때문에 떠나고 싶어도 어떻게 떠나야 할지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옵니다.

능력이 없어 아무 도움이 못 되지만 말씀만으로도 배부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내 스스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맹세한 사람들은 말을 잘 안 듣습니다.

빵이 말씀이라해도 안듣고 말씀이 생명이라해도 시시해 합니다.

반면에 어떤 제자는 주님께서 팥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말씀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