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부활제2주간 화요일 요한3,7ㄱ.8-15 부활의 의미(스승)
여러분은 손이 발처럼 생긴 사람을 보았습니까?
시내버스를 탔는데 청년이 제 앞자리에 앉아서 졸고 있다가 갑자가 깨어나더니 뒤를 돌아 어디쯤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볼 때 앉은 좌석 손잡이를 잡았는데 손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손마디가 짧고 새끼손가락이 엄지손가락 만큼이나 굵고 단단해 보였습니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자 양 손에 목발을 잡고 일어나 버스 승강장으로 성한 사람처럼 내려갔습니다.
오른 발이 없는 청년이었습니다.
비록 발이 없는 몸이지만 자신이 타고난 운명과 다르게 살아가면서 이를 극복하고 또 저토록 자유롭게 움직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을 극복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눈물보다 진한것이 피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결국 인간은 감정보다 혈통을 따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보다 진한 것이 있을까요?
신라시대에는 혈통만으로는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던지 인간의 뼈를 구분했습니다.
진골이니 성골이니 하여 진골은 결코 성골이 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이토록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에도 이와 비슷한 부류가 있었습니다.
사두가이들입니다.
사두가이는 다윗시대의 제사장 '차독'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차독은 '에브야타르' 제사장과 함께 다윗 왕실의 두 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다윗 시대에는 에브야타르 가문이 정통이었습니다.
그 가문에 속한 '엘리'는 대제사장으로서 사무엘을 키워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에 이어 솔로몬이 왕위를 잇게되자 솔로몬을 따르던 차독은 대제사장이 되었고 에브야타르는 살해되었습니다.(1열왕2,25)
그때부터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은 차독 가문이 차지하게 되었고 또한 그의 직계가 아니면 대제사장이 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니코데모는 산해드린에 속한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었습니다.
그는 사두가이로서 모세 오경만을 성경으로 인정했고 사후 세계와 영적 존재를 부정했으며, 물질적이고 현실적인것이 아니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니코데모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부활신앙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계십니다.
니코데모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어떻게 한번 태어난 사람이 다시 태어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어머니 배 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가 있습니까 하고 반박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게되자 자신의 그러한 현세주의와 지상주의적 신앙에 의문을 갖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염된 성전을 허물고 사흘안에 다시 세우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니코데모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알아들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이 추구하는 목적과는 동떨어진 삶입니다.
우리의 행복은 결코 지상에서 완성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창립자 복자 알베리오네는 참된 행복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세상의 물질과 만족과 지식과 영광만을 찾는 사람들은 어느 날 죽음의 문턱에 서 있을 때 모든 것이 헛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반면 주님을 알고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은 주님과 결합하여 영원한 행복 속에 들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나의 부활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묵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