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주님수난성금요일 요한18,1-19-42 고통의 의미
오늘 수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어졌다"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무엇이 다 이루어졌다는 말입니까?
성경 말씀이 다 이루어졌습니까.
당신 목숨이 다 이루어졌습니까.
인류 구원의 속량이 다 이루어졌습니까.
세상의 죄의 보속이 다 이루어졌습니까.
물론 이런 일들도 다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보다 더 시급하고 현실적인 의미를 띤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자식들의 이가 시리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를 뒷 받침해주는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은 개별 구원보다는 공동 구원이 지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갚지 못한 빚이 있으면 아들이나 가족에게 고스란히 되물림시켰습니다.
아버지가 하던 일을 아들이 물려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신 포도주를 드십니다.
신 포도주는 심한 고역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마셔야 했던 음료였습니다.
이런 신 포도주를 드시고 숨을 거두셨다는 것은 세상 고통의 되물림을 끊어버리시기 위함입니다.
태생 소경이 구원되기 위한 조건에 조상의 믿음이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공동체가 개인의 구원을 결코 앞서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사람들을 그렇게 다루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의 지도자이니 눈먼 소경이라도 내 자식은 당연히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 불쌍한 이들이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에게도 조상들에게도 의지할 곳이 없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본을 보이시며 십자가 위에서 모든 이들의 고역을 담은 신 포도주를 기꺼이 드시며 숨을 거두셨습니다.
한 인간의 삶을 통해서 가장 가치있는 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것은 고통의 수용입니다.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딛고 살아왔는가는 지금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내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고통의 산물이고
또 그것 없이는 행복의 가치가 희박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삶을 다시 되 짚어보면 고통스러운 삶은 곧 행복한 삶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은 고통으로는 큰 행복을 만끽할 수 없기에 가능하다면 매 순간 다가오는 소솔한 고통이라도 모아서 보속의 제단을 쌓을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에 내게 다가 올 때는 분명 작은 걸림돌들이었지만
세월이 흐른 후에는 큰 십자가 고통도 거뜬히 이겨낼 만큼 나를 흔들리지 않게 떠 받쳐줄 발판이 되어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