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다해 사순제4주간 수요일 요한5,17-30 아버지의 뜻

jasunthoma 2013. 3. 13. 04:00

일을 하다보면 학교에서 배운 일보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습니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일들은 대부분 잘 안가르쳐 줍니다.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어깨너머로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혹독한 시련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이렇듯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들은 어깨너머로라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꼭 그대로 따라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별 중요하지도 않고 제발 하지 말았으면 하는 일들은 금새 본받는 경우를 어렵지않게 목격하게 됩니다.

 

제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두려워하던 수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도원에서 몇해를 같이 지내다보니 언제부터인가 그 수사님이 무섭지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둘만 있을 때에 저도 눈에 힘을 주고 같이 째려봤습니다.

그랬더니 언제부터인가 제 아랫반 후배 수사님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저를 그렇게 째려보며 따지고 듭니다.

억울한 것은 분명히 제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배웠는지 제가 했던대로 그대로 따라하는 거예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하시듯이 안식일에도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즉 형제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배운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의 모상입니다.

아버지가 기침을 하면 아들도 기침을 합니다.

아버지 이가 시려우면 아들 이도 시린 것입니다.

좀 더 자세하게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그대로 따라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계시는 따름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외형적인 모습을 따른다는 의미에만 머물러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모든 것에 더하여 결정적으로 아버지의 뜻을 따른다는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순종하며 당신의 뜻을 따르는 아들을 아버지께서 사랑하시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뜻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놀랄만한 그보다 더 큰 일들은 무엇입니까?

오늘 복음에서도 말씀하시듯이 아버지의 일은 죽은이들을 다시 살리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과 온 우주에 있는 모든 죽은 이들에게 생명을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뜻은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갑니다.

그 아버지의 심오한 뜻은 세상만물을 다시 살리시긴 하되 당신의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러면 마치 고분고분하고 온순한 어린양처럼 아들은 자신이 죽음에 처하게 되는 이 때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장작을 짊어진 이사악이 아버지에게 장작도 있고 불씨도 있는데 어린양은 어디에 있습니까하고 물어보면서도 기꺼이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지 않았던 것 처럼

바로 지금, 이 때가 아버지께서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알아차렸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형제를 아버지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이 소중한 때를 놓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영원한 생명을 체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