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사순제3주간 금요일 마르12,28ㄱㄷ-34 작은 실천
요즘은 학교에 초록색 나무책상이 사라진것같은데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때에는 길쭉한 나무책상에 둘씩 앉았습니다.
왜 둘씩 앉도록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길쭉한 초록색 책상위를 보면 한결같이 금이 그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금이 한 가운데 한 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운데 한 줄만을 그어놓고 서로 넘어가지 않기로 약속을 했지만 차츰 지나면서 서로 약속을 어기게 되어 그 옆에다가 다른 금을 긋고 또 긋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모든 계명 가운데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님께서는 첫째 계명만을 말씀해주시지 않고 둘째 계명까지 말씀해 주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율법학자들은 언제나 가장 큰 계명인 첫째 계명에 관하여 논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그런데 큰 계명만을 중요하게 다루다보면 상대적으로 작은 계명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됩니다.
첫째 계명이라는 중요성이 다른 모든 계명들은 시시해지도록 만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둘째 계명까지 말씀하시고 나서야 비로소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즉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은 모두 하나의 큰 계명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게 되면 이웃과 나는 둘이 아니라 한 몸이 됩니다.
오히려 첫째 계명의 범위를 하느님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사람에게까지 넓히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첫째 계명인 하느님 사랑과 둘째 계명인 이웃 사랑이 따로 떨어질 수 없는 가장 큰 계명이라고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사순절을 막 시작할 때만해도 굳게 다짐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형제를 사랑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음을 차츰 깨닫게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도 어렵고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 또한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굳건한 결심에 치명적인 손상만 입히지 않는다면 조금씩 새로운 금을 긋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처음 다짐했던 결심이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는 가장 작은 계명인 이웃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하늘나라에 가까이 있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작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