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다해 사순제1주간 토요일 마태5,43-48 아이처럼(딸)

jasunthoma 2013. 2. 23. 04:56

시편 131편을 보면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여 잘난 체하는 마음 내게 없삽고 눈만 높은 이 몸도 아니오이다.

한다한 일들을 좇지도 아니하고 내게 겨운 일들은 하지도 않나이다.

차라리 이 마음은 고스란히 가라앉아 어미 품에 안겨있는 어린이인 듯

내 영혼은 젖 떨어진 아기와 같나이다.

이스라엘아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주님만 보고 살아가라.

성무일도서 제3주간 화요일 저녁기도에서 노래하는 아름다운 구절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완전한 사람, 곧 성인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냥 세월이 지난다고 다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성인은 단지 기간을 채운 사람일뿐 복음에서 바라는 성인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완전한 사람, 곧 성인일까요?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미있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누구누구 처럼, 무엇무엇 처럼의 처럼입니다.

상황에따라서 처럼은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표현을 지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처럼 불완전한 존재가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누구 처럼 살지않고 무엇무엇 처럼 살지 않고서는 성인이 아니라 사람도 되기 힘든 실정입니다.

사람은 홀로 된다는 것 그 자체로 죽음입니다.

 

술만 먹으면 때리고 부수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침이면 어린 아이는 아빠를 흔들어 깨웁니다.

엄마가 끓여놓은 콩나물국이 식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여전히 어린 아이는 병풍뒤에 누워계시는 아빠를 깨우러 갑니다.

손님들이 많이 왔기 때문입니다.

제 어머니께 들었던 제 여동생의 이야기입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성인은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짓습니다.

우리의 형제나 가까운 이웃이 아니면 원수입니다.

그래서 이웃이란 야훼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 친척, 동족들이 이웃이며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외에 사람들은 이웃이 아니며 그들을 미워하라는 것이 구약에서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 속에는 순수 야훼신앙을 지키려는 이스라엘의 고집스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 이웃이 아닌 사람은 모두 원수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토록 미워하고 원수로 여기고 있던 이방인들,

자기들을 박해하는 원수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원수들을 위해서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를 드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듯이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해야할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기가 말처럼 그리 쉽지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이성으로 알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가 아니고서는 고통스런 현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는 사람이 울지 않는 사람처럼 살 수 있습니다.

당신이 먼저 이모든 것을 감내하고도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내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모두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라는 창립자(복자 알베리오네)의 권고가 우리를 더욱 흔들어 깨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