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대림제3주간 화요일 마태1,18-24 어떤 의로움(딸)
미주 도서선교에 파견된 수사님께서 어제 뜻밖의 성탄 축하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평소같으면 부활이 다가와도 소식한번 띄우지 않다가 왠일인지 힘내자며 기도를 부탁해 왔습니다.
그곳 성탄 분위기가 여기와는 사뭇 다르기도 하겠지만
실은 많이 힘들어 하는 모양인가봅니다.
그래서 성탄 축하와 함께 그곳에서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한 구절 적어서 보내드렸습니다.
오늘 복음은 의로움을 모토로 살아가던 요셉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새성경에서는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공동번역에서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다고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생활하다보면 법대로 살게되면 득이 많을 까요? 실이 많을 까요?
오늘 복음에서 요셉은 법대로 편하게 잘 지내다가 마리아를 잘 못 만나 인생이 힘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대로 살았더라면 별다른 고생 없이 편하게 살았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천사가 나타나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존재와도 같았던 법을 어길까? 지킬까?에 기로에 서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결국 법대로 살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자신의 분신과 같았던 법을 폐기시키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적으로는 그는 어떻게 될까요?
혹을 초기에 떼내어 버리지 못해서 혹을 하나 덧붙이게 될 일만 남았습니다.
여태껏 지켜오던 법을 저버리게 되면서 요셉은 바보가 되고 말았습니다.
요셉은 지금까지의 의로움을 버리고 "세상의 쓰레기처럼, 만민의 찌꺼기처럼"(1코린4,13)되기를 원한 것입니다.
왜그랬을까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천사의 말이 허투로 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윗 가문의 정통한 유다인 중의 유다인인 요셉이 임마누엘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리가 없습니다.
요셉이 법을 그토록 소중히 여기며 지키려고 했던 것도 다 하느님과 함께 있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법대로 살다보니 하느님은 보이지 않고 사탄과 악령들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약혼한 여인인 마리아에게서 잉태될 아기는 달랐습니다.
그 아기는 자신이 혼신을 다해 지켜오던 법을 완성하러 오실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와 임마누엘 아기예수님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 지내시면서 내가 지키기를 원하는 의로움이 어떤 의로움인지를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