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7월3일 성토마스사도축일 연중제13주간 화요일-내면의고백
오늘 복음에서 토마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하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 의미심장한 신앙고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토마스를 질책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첫째, 토마스의 이 의미심장한 신앙고백은 다른 제자들의 고백과 어떻게 다를까요?
둘째, 어떻게 다르기에 그 신앙의 핵심을 관통하는 고백을 하고도 예수님으로부터 질책을 받았을까요?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을 뵈었을 때에는 어떤 말로 그들의 신앙을 고백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본문에는 단지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라고만 전해줍니다.
그런데 토마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었을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하고 고백합니다.
이 신앙고백은 다른 제자들이 토마스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하고 말한 것에 비하면 상당히 적극적이고 대담한 고백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을 때에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기뻐했을 따름인데
토마스는 당당하게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른 모든 제자들이 보고있는데서 "주님" 그리고 "하느님"으로 고백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유다교 신자들이었고 당시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자주써서 속되게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입에서 "하느님"이라는 말은 쉽게 꺼낼 수 없었습니다.
즉 입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이 익숙치가 않아서 매번 좋아한다고 얼버무리는 것과 같은 것 같습니다.
그런 제자들에 비하면 토마스는 도아니면 모인것 같습니다.
토마스는 다른 제자들에게 보란 듯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었으면 이정도는 고백을 해야지
뭐 그저 주님을 뵙고 빙그레 미소지으며 기뻐하는데서 멈춰서야 되겠는가라는 것이 토마스의 익숙함이었습니다.
이것이 특별함이라라면 좋은 점으로 인정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과장된 모습을 예수님께서 못알아보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중대한 고백을 했음에도 예수님께서는 토마스를 질책하신 것입니다.
이런 토마스의 신앙고백 모습은 분명 예수님과 단 둘이 있을때에는 유효하고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고백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토마스가 그 고백을 할 때의 정황은 다른제자들도 모두 함께 있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른제자들에게 먼저 찾아가셨을 때에 그들은 두려워서 문을 모두 잠가놓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토마스는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숨어있지도 않았고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나 돌아다녔을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부인한 것 처럼 '나는 그런 사람을 모르오'하고 변명하기에 바빴을 것입니다.
사실은 그도 속으로는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런 토마스였기에 베드로처럼 돌아서서 눈물도 흘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락방으로 돌아와보니 벌써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녀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내면에서 속삭이는 소리는 지붕위에서 선포된다(루카12,3)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또 한번 행복의 비결을 가르쳐 주십니다.
육이 아니라 영혼으로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말이 없어도 함께 기뻐하며 한 마음 한 뜻이 될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