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사순제3주간 금요일 마르 12,28ㄱㄷ-34 거룩한가르침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에게 '훌륭하십니다. 스승님'이라는 칭찬을 듣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또한 율법학자를 슬기롭게 생각하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왜 예수님께서 율법학자에게 칭찬을 들었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를 왜 칭찬하셨습니까?
먼저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모든 계명 가운데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님께서는 첫째 계명만을 말씀해주시지 않고 둘째 계명까지 말씀해 주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첫째 계명에 있습니다.
둘째 계명까지 말씀하신 것은 단지 첫째 계명의 범위를 넓히시고 한정시키기 위한 관대한 가르침 때문에, 거룩한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무슨 가르침을 넓히시고 또 한정시키셨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계명 가운데서 첫째가는 계명은 하느님은 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하느님을 전인적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은 첫째 계명에 따른 실천 상항입니다.
십계명의 예를 든다면 하느님에 관한 세가지 계명을 하느님 사랑으로 요약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나머지 일곱가지 계명을 이웃 사랑으로 요약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 예수님께서 둘째 계명을 언급하시면서 첫째 계명인 한 분이신 하느님에 이어 하느님을 사랑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율법학자가 첫째가는 계명만을 물어보았는데 예수님께서는 계명만을 말씀해 주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계명에 이어서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실천사항을 가르쳐주시며 계명의 범위를 넓히셨습니다.
그러나 율법학자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즉시 정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학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뭐라고 말했습니까?
율법학자는 하느님은 한 분 뿐이시다는 말씀을 따로 떼어내서 받아들였습니다.
그다음 이어지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묶어서 이야기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분리해서 두 계명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한데 묶었습니다.
그리고 율법학자는 하느님은 한 분 뿐이시다라는 정통적인 가르침에 충실했습니다.
이런 율법학자에게 예수님께서는 슬기롭게 대답하신다며 하늘나라가 그에게 멀리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칫하면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우리 주위에 있는 민족들이 섬기는 신들을 따라 갈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를 슬기롭게 생각한 것은 이방인들이 혼재되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잊지 말아야 할 한가지를 분명하게 지적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들이 두루 받아들일 수 있는 관대하고 거룩한 사랑의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사랑의 핵심을 찾아내는 율법학자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요.
오늘 하루 지내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